지난주(5월 18일~22일) 미국 「뉴욕」에서는 가톨릭언론출판 제7차 국제회의가 있었고 이 기회에 교황성하는 특별 「메시지」를 보내어 『진리는 너희를 속량하여 내리라』(요왕 8장 32절)라는 성경말씀을 인용하시면서 구원의 복음전파에 있어서의 가톨릭언론 사명의 중대성을 다시금 강조하였다.
어느 국가 사회든지 언론이 올바로 살아서 제구실을 할때 그 사회는 일약 발전을 할 수 있고 그렇지않고 언론이 제구실을 못할때는 언제나 두사람의 농락에 흔들려 뭇 대중이 신음을 당한다는것은 역사가 우리에 말해주는 생생한 교훈이다.
그러나 또 한편 언론기관이 국가사회를 망치는 수도 없지 않다. 따라서 그 사회의 언론기관의 기능은 그 사회를 특정하는 「바로메타」라고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톨릭사회에서의 언론의 문제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가톨릭에서도 당연히 언론창달이 있어야한다. 물론 가톨릭의 언론계는 다른 사회의 그것과 성격이 달라야함은 더 말할것도 없을 것이다.
교회의 기본정신에서 탈선 할 수 없고 또한 어떠한 이유로서든지 반교회적인 발언을 할 수 없으며 더구나 민중여론에 호소하여 교권에 항의할 수도 없는 것이다. 교회는 현대적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세워진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성신의 감도로, 그리스도의 지상대리자의 무류권에 의해서 인류의 구속사업을 하는것이 그것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도 인간의 모임이요, 인간의 모임에는 많은 결함을 내포하게 마련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우리신비체 회원이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최대능력을 발휘하여 최소한의 인간결함을 보지하도록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지난번에 발표된 교회헌장에도 『아랫사람은 자기의 전문지식, 권위에 따라 교회공익을 위해서 자기의견을 발표하는 것이 가하며 경우에 따라 한가지 의무이기도하다』라고 했다.
우리는 우리교회의 한 지체로서 교회의 한 책임자로서 우리의 건설적인 의견을 말할 수 있고 그러한 기회를 가져야 가톨릭은 발전할 것이다. 그러므로 잘못에 대해서 객관적이요 전설적인 비판을 던질때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것을 시정하는 겸손된 아량이 필요하다. 그렇지 못하고 순간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졸렬한 태도나 언사를 퍼붓는 것은 정말 유감스런 일이다. 새 생명을 분만하기 위해서는 진통이 있어야하듯이 한국가톨릭이 좀 더 새로운 교회발전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이것에 비례되는 진통을 겪어야 하리라.
앞으로 한국가톨릭의 언론기관은 좀더 과감하게 명실상부한 한국가톨릭의 소금과 등불이 되어야할 것이다.
현하 우리한국가톨릭의 시와 비를 올바로 판단하고 그것을 끌고나가야하는 것이 곧 가톨릭신문의 사명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