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되리, 푸른하늘 날아다니며, 푸른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의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이 시는 나병에 시달려 일생을 불우하게 살지않을 수 없는 시인 한하운씨의 파랑새란 시다. 그는 그 병마로 인해 이 세상에서 얼마나 지독한 병고와 모멸과 학대와 인종에 시들었던지 죽어선 부디 파랑새라도되어 푸른창공을 자유로이 훨훨 날아가겠다는 너무나 처절한 설움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리라. ▲인간이 세상에서 자기 영혼의 죄업을 닦는 길이 고통을 통해서라면 저들 나환자들만큼 외적 현실적 조건에서 인간고통의 절항에 이른자도 드물 것이다. ▲아무리 못생긴 용모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사람은 누구나 약간의 「나르시스」(자가도취)의 소질이 있고보면 열심히 거울과 타협함으로써 어떤 자위의 여지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인데 그런 뜻에서 나환자는 그 육체만으로서는 완전한 자기 거부에 달해있다. 그들은 목숨이 부지된채로 인간의 형상이 자꾸만 무너져가는 어처구니없는 육체의 폐허에 서서, 살아서 이미 자신의 시체를 경험하는 정상이 아닐까 ▲그들은 모든 인간사회에 몰러나고 타기와 공포의 대상이 되거나, 아니면 어떤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 됨으로써 숙명적이고 필연적인 겸허의 지경에 처해있고 그 고통의 현실체험에서는 거의 순교자적 생을 겪고있을지도 모른다. ▲흔히 나환을 천형(天刑)의 병이라고 한다. 이는 당치도 않는 미신적 인습일뿐아니라 인간은 누구나 다 어떤 병질에도 걸려들 가능성이 있고 마지막엔 죽게될 육체를 가졌다. 뿐 아니라 인간의 죄의식으로 말하더라도 인간존재의 그 기저(基底)로부터 모두가 죄인인 우리로서 의식적이 아닌 인간조건의 불행에 대해서 천형이란 낙인은 자신의 뱃속에는 오물이 들지 않았다고 비인간적 결백을 주장하는 것과 같은 「넌센스」다. ▲이미 과학이 음성 나환자의 전염성의 전무를 보장하고 있음에도 그들의 서식(捷息)을 거부하고 축출함은 인간생존의 자연권을 박탈하는 뜻이다. ▲나환자는 또 그들의 불우한 운명으로 인해 언제나 현실저주와 울분을 야성적으로 터뜨릴때 사회에서 점점 이질적 종족으로 밀려나 고립되지 않을까. 또한 내적인 의미에서도 그것은 영육이 함께 불구가 되는 비참한 운명에 떨어져 『흙이 있다 하늘의 구름과 푸른 지평은 넓기만한데 문둥이가 살 지적도(地籍圖)는』 참으로 영영못찾게 될가 저어하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