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기 현대처럼 「지성」이란 말이 난발된 적도 없으리라. 「지성인의 현실참여」 「지성인 개종」 「지성인단체」 하는 식으로 그것은 교회 안팎을 막론코 하나의 유행어처럼 되어있다. 헌데 우리말에 식자우환(識字憂患)이란 말도 있다. 이는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겠으나 첫째로 『학문은 심약하고 이를 사용할줄 모르는 자의 손에 들면 배우지 않는 편이 낫다』는 서양의 한 고전작가의 말처럼 지식을 오용함으로써 자신은 물론 남에게 누를 끼치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또한 고대 회의철학자 피로소가 항해중 풍랑을 만났을 때 동승했던 많은 승객이 지레 겁을 먹고 혼비백산하는 꼴을 보자 배한켠에 아무것도 모르고 묶인채 태평하게 누워있는 돼지를 가리키며 인간이 저 돼지처럼 숫제 모르면 속이 편하련만 알아서 만사가 우환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닌게 아니라 사람은 때론 지긋지긋한 현실이나 혹은 뜻하지 않는 위험 앞에 의식적으로 눈을 질끈 감고 외면한 채 현실 기피를 하려들때도 있다. 허지만 인간이 본질적으로 동물과 구별됨이 지성과 의지와 이성에 있고, 이는 태초부터 숙명적인 인간조건인 바에 제아무리 시치밀 뗀다한들 모면할 도리는 없다. ▲그렇다면 현대 인간의 지적 상황은 어떤 것인가? 사람들은 이제 달의 실존에 눈이 떠 그를 향해 시닙와 시정에 취하기엔 의식이 맹숭맹숭할 지경이다. 그들은 오라잖아 달에 이주한 지구민(地球民)으로서 오히려 옛고향인 지상을 향해 「노스탈지」를 느낄지도 모르겠다. 뿐인가 모든 사물의 실증을 요구하는 무신적 유물사상, 고도의 예술, 문화는 인지(人智)의 절정을 지향하고 있다 할 것이다. 실로 인류는 스스로 발굴하고 축적한 지식 앞에 공포와 전율을 느끼기에 이르렀다. ▲허나 그 지식은 실로 『기억력을 채웠을뿐 이해력과 양심은 비워둔채로다』 다시말해 그것은 망원경을 통해 보듯 인간기억력에 의한 기술적 지식은 무한히 확대됐으나 내적인 도덕적 시야는 지극히 쪼물어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지상에 여전히 전쟁과 기근과 포식과 인종차별과 우주정복의 기술암투가 있는한 인류는 부분적으로나마 아직도 유치한 소아병을 앓고 있는 셈이다. ▲억만광년의 우주를 헤아릴 수 있는 「두뇌의 지력」을 지녔을 망정 한길 자신의 마음 속 양심을 내성(內省)하고 이웃을 이해하는 심정(心情)의 자력을 가질 능력이 없는한 인간은 별로 존엄치도 않고 지적 존재도 못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