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인간은 그 전쟁애를 통해 희망과 포부를 지니고 있음이 상정이며 이를 위해 자신의 역량을 경주한다.
그리하여 인간은 그 인간된 척도를 그가 지난 포부와 희망에 따라 측정할 수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이란 인간을 무한히 초월하는 것이다.』라고 빠스칼은 말했거니와 천주의 모상을 닮은 인간은 이렇듯이 영원한 것에 대한 갈망을 잃지 못하는 나머지 그의 역사는 부단한 완전에의 촉구로 이루어져 왔던 것이다.
차제에 우리의 현실의 추구는 무엇인가 살펴볼만하다. 이즘 국민일반, 나아가 오히려 위정자들이 하나의 정책처럼 세간에 내세우고 있는 구호가 『우리도 잘 살아보자』 『-잘 살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또한 거의 우리 전체사회속에 패배된 절실한 잠재의식이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이는 먼저 그 말 자체만으로 생각해볼 때 극히 인간본능적인 욕구에서 울어나는 단순하고도 거의 노골적인 표현같은 감조차 없지 않다. 확실히 아직도 인간생존의 기본권에서 일보전진하지 못한 인간적이고도(또한 비인간적) 절실한 이 염원이 바로 부정할 수 없고 도한 선결할 한국적 현실문제임에 틀림없다.
이 지상에는 비단 우리뿐 아니라 아직도 수다한 후진적인 민족이 빈곤과 기아의 질곡에서 허덕이고 있으며 이는 여러가지 사회악을 유발하는 직접원인이 됨으로써 그 국민의 정신적면조차 침해하고 있다.
사실 현대는 선진 후진을 막론하고, 또 그 정도의 대차를 막론하고 모든 국가아 물질문명에 의한 복지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사회에 있어서 하나의 국가형태인 이 복지국가는 인간국가가 지향하는 하나의 완전한 국가형태라고는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이는 국가전체적 목표가 될 수 없고 오히려 그 목표의 수단 · 전제(前題)에 불과하다.
서구 여러나라 중 이를 하나의 제도로써 거의 완전성취한 나라가 있으나 거기엔 여전히 인간본질적이고도 내재적 문제가 그대로 잔존하며 그것은 새로운 형태의 사회문제로서 허다히 노출되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한 사회가 안정되고 진취적이려면 동적(動的)인 국면은 물론이나 어떤 다소 고정된 원리기초(原理基礎)가 있어야 한다. 이 양자가 다 필요한 것이다. 동적 국면 없이는 정지(靜止)와 부패가 있으며 어떤 원리의 고정된 가치가 없이는 분해와 파괴가 있기 쉽다.』 이는 인도의 고(故) 네루 수상의 말이다.
즉 인간은 아무리 물질적으로 유족하고 사회적으로 품위있는 인간 생활이 보장된다 할지라도 생(生)에 의미를 부여하는 근원적인 가치에 대한 정신적 지주가 없이는 내적 분열, 다시말해 세계도처에서 고도의 물질문명을 누리면서도 안일한 「무드」 속에서 해이와 허탈에 빠지는 어쩔 수 없는 정신적 위기가 그것이며, 일변 빈궁이 낳는 비참한 고질은 『그 나라 그 자체의 인생관을 추구하려는』 고도한 정신마저 정체상대에 멈추게 할 뿐 아니라 생존유지에 급급한 나머지 드디어 사회성장의 저해 내지 부패를 유발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불변하는 가치관에 대한 추구, 이러한 「민족적 예지」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바로말해 그것은 없었다. 게다가 또한 우리는 물질적 근대화에 있었어도 물론 후진적이다. 그렇다면 이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첫째 불가항력적인 지리적 역사적 조건이 어느정도 있다 하겠다.
둘째 이조봉건잔재의 악습, 식민지 민족말살정책하에서의 위축 저상된 주체의식, 이러한 정신유산(遺産)은 해방후 20년간이나 민족의 건전한 사회육성은 고사하고 집권층의 권모술수 부정부패 개선없는 시행착오(施行錯誤) 갖은 악습이 만연한 사회풍조로 인해 우리는 무의미한 역사이 공전만 거듭했을 뿐이라해서 과인아 아니리라. 사실 우리는 적어도 해방이후 20년동안 잘살 기회가 전혀 없었던게 아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런 사회와 현실적인 여건을 극복하고 역사를 개조 창조해 나갈 적극적인 의지마저 없음으로써 우리의 염원은 아직 「살아야겠다」는 초보적인, 차라리 인생으로선 당연한 조건인 그것을 여태 하나의 민족적 과제로 삼고있는 지경이다.
이제 진정 잘 살기 위해서는 못살게된 원인을 진지하게 규명모색해야 되겠고 장구하고 도보다 본질적이며 올바른 의미에서(정화된 정신 바탕 위에 선물질적 추구) 우리의 현실과제가 추구되고 달성되기 위해 민족주체의식의 확립과 자각이 필요할 것이다. 인류 역사의 전환기를 이룬 「바티깐」 공의회는 천주의 계시진리의 빛을 받아 위기에 선 현대인이 이 현세에 있어서의 그 자신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깨닫고, 「근원적인 가치」로 지향할 수 있는 은총의 「메시지」를 발했다.
그렇다면 이 나라안에 자신의 바탕을 둠으로써 민족 일원으로서이 의무와 천주의 백성으로서의 의무를 함께 지닌 그리스도자들은 이런 상황하에 있어 그 「메시지」를 전달하고 시행할 어떤 현실적 불안을 가지고 있는지 묻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