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彷徨을 通하여 끊임없이 따라오신 神의 視線을 나는 지금 내 어깨 위에 느끼고 있다. 나의 彷徨의 終結, 神과 연결된 나자신은 나의 奇蹟이다.(本文中에서)
샤르트르의 「自由의 길」 처럼 宗敎는 나에게는 하나의 選擇이며 決定이었다. 왜 選擇해야만 했고 決定하지 않으면 안되었던가? 그것은 나의 存在의 理由였을 것이다.
選擇과 決定의 內的인 재촉이 없었더라면 나는 平生을 한 徘徊者로서 方向이없는 數 많은 觀念의 희롱자로서 有神論과 無神論의 肯否의 되풀이로써 끝마쳤을 것이다.
選擇은 行爲를 意味하는 것이다. 選擇과 決定이 行爲에의 出發이 아니었을 진댄, 나는 가톨릭에 들어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그새 反宗敎的인 思想에 젖어 있었으면서도 그 實綫的 行爲에 나自身을 감당할 수 없으리라는 結論에서 드디어 다시 「크리스티아니즘」에 돌아 온 것이다.
또한 그것은 나自身에 돌아온 것이다.
實은 나에게는 宗敎的인 要素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오히려 意識的인 오랜 自己否定을 해온 것이다.
女學校를 卒業할 前後 읽은 지이드의 作品에서 나는 깊은 呼應과 共感을 가졌고 너무 많은 影響을 받았다. 그의 人本主義的, 實存主義的 結未의 어떤 作品은 지금 가톨릭에서 禁書가 되어있다고 하지만 그 當時는 暗未된 內容的 思想의 把握은 못한 채로 作品 全般을 흐르는 짙은 宗敎的 雰開氣와 提示된 「크리스티아니즘」에의 感受였던 것이다.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하나일 것이다. 萬一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이러한 것이 決코 또 나에게는 새롭지 아니하였던 것이, 戰爭은 일어났지만 社會의 물결이 뒤늦은 아직도 흔들리지 않는 價値觀이 支配하는 고요한 環境이 나의 幼少女時節을 지켜 주었다. 그것이 結局 나의 가장 밑바탕을 흐르는 低流였고 그 後 늘 여기서 出發이된 辯證法的인 過程을 쓰거쳐 갔다고 할 수 있다. 即 내가 「부르조아지」的인 觀念世界를 신랄하게 非難하기 始作한것도 結局은 一種의 自我批判이며 脫皮를 위한 自己嫌惡였다고할 수 있다.
내가 神을 否定한것은 科學的인 分析에서오는 論理에서가 아니고 人間에 對한 神의 倫的理인 責任追窮에서 오는 懷疑와 不滿과 反感이었다. 이 不滿과 反感은 神의 存在를 認定하는 逆說이 아닐 수 없다.
即 나는 惡을 傍觀하는 神, 人間의 罪를 人間에게 責任지우는 神에게 反感을 가졌다 人間의 罪는 狀況에 있는 것이며 또 그 狀況을 克服할수 없었던 卑少한 靈魂의 質과 量은 역시 神이 준 것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또 나는 우리의 凄慘한 集團現實의 凝視에서 이슬을 받아먹고 사는듯한 것이 優雅한 지이드의 主人公들의 生活方式이나 「애고이즘」的인 視野에 嫌惡를 느끼기 始作했고 「크리스티아니즘」이 決고 우리의 救援이 될 수 없다고 느꼈다. 그들은 이 洪水처럼 뒤덮는 集團的 威脅을 막아낼 아무런 根本的인 政治的 經濟的 對策도 가지지않을 뿐더러 無神論과의 對立에서 어쩌면 資本主義의 同調같기도 하고. 다만 그 事後處理에 지나지않는 微微한 事會事業같은 것은 너무 傍觀이고 冷淡하게만 느껴졌다.
나는 社會主義가 人類의 보다 現實的인 「휴메니즘」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한 肯定이 늘 또 하나의 否定을 同伴하고 있었던것은 그들이 지닌 方法的인 深刻한 矛盾이었다.
善의 結果를 위한 악의 方法一, 善을 爲한 것이나마 惡을 忍耐할 수 없는 나의 甚한 政治性의 缺如등을 생각할때, 나는 나의 本質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또 나는 때로 隣人愛보다도 「헬레니즘」的인 自己愛가 보다 人間의 自然性이라면 그것이 眞理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自己愛가 언제나 解放된 自由의 魅力을 주는가 하면, 隣人愛는 壓迫된 義務感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價値는 義務에 있다.
또 나는 選擇과 決定 그自體를 拒否해온 오랜 事實도 숨길 수 없다. 그것은 모든 可能에의 除日이 지니는 甘美로운 自由였을지 모르나 그것은 「데카당스」의 自己陶醉에 不過하다.
그렇지만 내가 萬一 指導神父任의 敎理에 滿足할 수 없었다면 唯物論의 行爲者가 될수없었듯이 나의 彷徨은 繼續되었을지도 모른다.
神의 存在를 證明하는 몇몇 論理가운데서 내가 가장 흔들림을 받은 것은 作者와 作品의 비유로서의 神과 人間이었다. 即 作品이 지니는 뜻은 作品自體의 物質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作品밖에 서 있는 作者에게 있는 것이라고 하였을때 나는 어떤 靈感的인 感動을 느꼈다. 나의 오랜 질곡이 깨뜨려지는 瞬間이었다. 그토록 울부짖어온 이 벅찬 人間의 뜻은 人間自身이 지녔던 偶然한 것이 아니라는 것-.
그것은 두려운 즐거움이요, 不條理의 暗黑속에 던져진 薄明의 窓이 아닐 수 없다. 人間의 뜻을 計劃한 또 하나의 存在를 생각해보는 일, 그것은 무릇 소음이 멎는 놀라움이다.
나는 그날밤 돌아오는 길에, 오랜만에, 그리고 조심스럽게 自身의 옛 日記帳을 뒤지는 어느 해후의 情을 느끼면서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며, 創造된 人間의 모습을 생각해보았다. 『저 하늘에 반짝이는 별과 이 마음속에 道德律을 생각할때 神을 믿지 않을 수 없다.』고한 칸트의 말을 되새기면서-. 人間이 지닌 가장 으뜸가는 屬性은 倫理性이다. 人間이 求하여 마지않는 善과 美 그것은 作品속에 意圖한 作者인 神의 뜻인 것이다.
人間은 神이 創造하였다는 論理에서는 信仰은 人間에게 義務로서 주어진다. 信仰이 義務일때 科에 對한 懷疑는 풀수 없는 대로 사라져버린다. 即 人間의 次元으로 神의 次元을 理解할수 없는 嚴然한 現實을 凝視해야 하는 것이다. 마치 그것은 庭園師에게 끊어지는 나무가지가 그 理由와 抗議를 論할수 없고, 그 발에 밟히는 개미가 사람의 발의 輪廓조차도 알수없듯이-.
狀況改造를 爲하여 하나의 制度나 體制를 過信할수 없다. 不完全한 人間이 자아낸 制度는 必然的으로 지닌 그 自體의 矛盾때문에 人間을 抑壓한다. 人間救援에 관한 人間의 摸索이 人間안에서만 머물고 말때, 고작 大를 위한 小의 희생이란 到達로써 많는 人間들은 하나의 制度나 體制를 찬양하며 支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不完全하다. 또 보다 效果的인 制度일지라도 그것을 行使하는 者의 良心에 依해 腐敗될 수도 있고 보다 矛盾된 制度일지라도 그것을 行使하는 者의 良心에 依해시 人類는 幸福될수 있다. 그러기에 人間을 救하는것은 制度가아니다. 制度는 人間을 抑壓한다. 그것은 人間의 가장 內面的 良心의 自由行使에 依하지 않으면 안된다.
스스로 發露하는 良心의 行使에 依해서 모든 位置에선 個人 하나 하나의 淨化가 이루어지는 瞬間의 淨化는 이루어지는 것이다.
敎理를 들으면서도 比較的 淡淡했고 또 늘 그것이 걱정스러웠던 나에게 眞正한 信仰의 感動이 온 것은 領洗後였다. 信仰은 理性과 意志의 힘이라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感情的 自然發生的 盲目的이 되기를 渴望했던 것이다.
그것이 神에 對한 人間의 보다 本質的인 姿勢일것이다. 오랜 抵抗속에 머물러 敢히 인색하고 당돌하기만 했던 나에게 天主님께서는 그의 門안에 들어서는 온전한 契約없이는 高貴한 사랑을 헛되이 보여주시지는 않은것 같다.
그동안 오랜 彷徨을 通하여 끊임없이 따라 오신 神의 視線을 나는 지금 내 어깨위에 느끼고 있다. 나의 彷徨의 終結, 神과 連結된 나自身은 나의 奇蹟이다. 때로 그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嗚咽을 가져오는 瞬間이있다.
잃어버린 한마리의 羊을 찾아 헤매이신 至極히 아름다우신 그리스도, 至極히 어려운일을 遂行하신 人間 그리스도를 나는 默想할 수 있다.
그는 곧 神이셨다. 어느 地上의 王朝의 그것보다 더 深奧하고 華麗한 敎會의 禮節에 나는 황홀해질 뿐이다.
人間은 決定되지 않는 自由속에서 더 많은 不安과 虛無를, 決定된 不自由(?)속에서 더 많은 安定과 平和를 느낀다. 肯定보다도 否定하고 핀잔을 줄 수 있는 位置에서 人間은 보다 「스케일」이 큰 自負를 錯覺한다.
나의 이 헛된 千廻가 이제는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는 꿋꿋하고 고요한 앞길을 約束해주는 것으로 다만 自慰한다. 實로 그것은 千廻였고, 너무 늦었다.
孫우경(大邱曉星女校敎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