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四旬節)이 왔다. 교회는 일년에 한번 주의 수난과 함께 부활축제를 장엄하게 거행함을 임무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금년부터 대소재규율(大小齋規律)이 대폭 완화되었다. 우리는 이제 일년에 두번 즉 사순절이 시작하는 날과 예수수난날 대재지키면 넉넉하다. 또 사순절의 수요일(성회례봉재수일 제외)과 사계 수요일의 소재가 없어졌으며 소재 지키는 연령도 종전의 7세가 14세로 연장되었다. 이러한 교회의 조치는 가톨릭의 통회보속의 값진 전통이 너무 헐값으로 넘기는 것이라고 한탄할 분이 있을지 모르나, 고행의 외적형식은 시대와 환경을 따라 다르지만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한 그리스도의 말씀은 불변하고 천국의 문은 여전히 좁은 것이다. 그러나 재를 지키고 고신극기를 하고 매일 미사에 가는 것만이 사순절일까? 아니다. 사순절은 좀더 깊고 동시에 좀더 단순하면서도 내적희생이 충만해야 하는 때이다.
즉 그것은 회심하는 것이다. 악을 등지고 천주께 돌아가는 것이다. 물론 단식, 기도, 애덕 실천 등의 행동이 우리의 마음을 돌리는 이 변화에 소용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것은 우리의 생활을 그리스도의 생활대로 수정하는 것이다. 고행과 선업의 외적 형식은 그를 위한 수단방법에 지나지 않다. 우리의 생활이 천주 원하시는 그대로 완전한 것이 되기 위해 변화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어렵고 값지고 또 긴 시일을 요하는 것이다. 우리 혼자의 힘으로 거기 도달할 수 없다. 위로부터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 도움을 우리에게 주기 위하여 사순절이 존재하는 것이다.
만일 누가 부활성사가 무엇이냐고 신자에게 묻는다면 아마 대부분 성체성사라 답할 것이다. 물론 교회는 모든 신자가 일년에 적어도 한번 부활때 영성체 할 것을 명하고 있다.
그러나 부활의 성사는 무엇보다 먼저 성세성사이다. 부활전야제(前夜祭)의 전례는 사순절 전체를 영세의 약속을 성대히 새롭게 하는 준비기간으로 보고있다. 신자생활의모든 발전은 성서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데 그 원천을 두고있다. 그럴지라도 이 「바스카」 즉 죽음에서 영광된 새 생명으로의 이월(移越)을 거행함에 있어 성체를 생각하는 것이 그릇된 것은 물론 아니다. 그리스도께 우리를 일치시키는 성세성사는 성체라고 하는 새로운 생명에의 근원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아 부활 영성체는 다만 교회의 형식적인 법규만이 아니요, 새로 영세한 자가 자신의 전(全) 존재를 그리스도께 더 온전히 동화시키기 위해 그의 「바스카」의 신비에 참여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최소한도로 부활고해성사도 부활영성체의 준비만이 아니요, 그것은 각자 죄에 죽고 구세주의 성혈로 정화되어 「바스카」의 시닙에 참여하고 성세의 은총의 신선미를 발견하는 필수불가결의 방법이다.
그러므로 성세성사는 그리스도와 같은 죽음에 죽게하고 그와 같은 생명으로 우리를 부활케 하는 성사이다.
만일 사순절이 부활축일을 준비하는 것이라면 「바스카」의 신비에 더 집중된 보속의 시기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십자가의 고통을 통하여 당신 영광으로 초대하신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는 죽음의 고통으로 인하여 영광의 월계관을 받았다」고 말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연장이요 우리는 그리스도와 교회와 함께 운명을 같이해야 한다. 천주를 위하여 형제들을 위하여 좀 더 무엇을 할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남이 주릴 때 목마를 때 나그네될 때 헐벗을 때 병들 때 옥에 갇혔을 때 할 수 있다고 그리스도는 말씀하셨다.
사순절은 또한 전례안에서 전례를 통하여 천주의 말씀으로 양육되는 시기가 되어야 한다. 전례와 함께 특히 사순절 미사 독서에서 영세자들은 옛날의 「바스카」의 빛으로 우리의 「바스카」를 인식할 줄 알아야 한다.
영세지원자와 함께 우리도 그들과 같은 자세를 취하는 것이 사순절의 목적중 하나이다. 위에서도 말하였거니와 부활전야제에는 영세없이는 본질적인 요소를 결한다. 그러나 영세없이도 그것은 성세적일 수 있다.
왜냐하면 기성신자는 거기서 영세의 서약을 갱신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온전히 회심하였는가? 온전히 그리스도에 귀의하엿는가? 여기에 부족이 있다면 우리는 그리싀도의 말슴을 들으면서 영세지원자처럼 그리스도의 죽음에 묻히고 그이 부활속에 새로 나도록 노력해야 한다. 마귀를 단절하고 그리스도를 선택하고 십자가가 생명으로 인도된다는 것을 온전한 마음으로 믿고 신앙과 애덕과 인내와 자기희생 속에서 성장하는 것이 바로 거짓없는 부활축일을 준비하는 것이다. 영세자가 오늘 영세지원자로 돌아간다면 내일의 새 신자는 오늘보다 더 훌륭한 신자가 될 것이다.
사순절은 부활축일을 대망하는 시기가 되어야 한다. 머리에 재를 받는날(聖灰水曜日)부터 부활 전야제 성세의 서약을 새롭게 할 때까지의 귀중한 날들을 그냥 보내지 말고 회심의 생활로 초대하는 단계를 밟아 우리의 내적 생활을 충실히 하고 영세지워자와 함께 우리도 영세 지원자가 되고 새로운 계약의 중재자 되시는 그리스도를 관상하면서 신앙의 향상을 도모해야 한다.
미사와 말씀의 전례, 그외 사순절 신심, 또 공의회 이후의 성년 특별행사 등이 그리스도의 부활축일을 향하여 진행한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인식되고 실현된 사순절은 하나의 전례적 신비를 이룰 것이다.
이러한 뜻으로 보면 사순절을 시작하자 이미 「바스카」의 신비를 거행하는 셈이 된다.
사실 사순절 시작부터 우리가 주님의 부활에 이미 일치되지 않고서는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른다 할 수 없다.
사순절 시작부터 또 일년을 통하여 교회는 고해 성체 미사 등 성사생활에 우리를 초대하고 신자 각자 그리고 신자 공동체 안에 이 죽음에서 부활에의 통과를 현실화한다. 거듭 말하거니와 흔히 사순절은 재를 지키거나 여분의 신심을 하는 것이라는 우리의 정신에 아주 다른 것을 발견하도록 하자! 즉 마음과 정신으로 이 사순절에 들어가도록 하자! 그것은 즉 회심이다. 이것 없이 참 「바스카」가 없다. 또 이것이 사목자들의 사순절의 사목지표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