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즘 「사랑의 종」을 울려 밤거리를 헤매던 10대 소년들을 집으로 돌아가게 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결과야 어떻든 이 생각은 바로 그 본래의 소년들만큼이나 순진하고 어떤 정서적인데가 없지도 않다
▲밤 종소리, 그것은 비단 나어린 소년들만이 아니라 일터에서 돌아가는 노을진 들녘의 농부에게나 젯빛 도시의 포도(鋪道)를 가는 노동자에게, 안식처를 구하는 모든 인생에게 문득 어떤 향수를 실어올 것이다. 그것은 흔히 우리네 가정에서 볼수있는 저 미래의 「만종」 속에 타난 그 사랑과 근로와 경건한 신앙이 깃든 그러한 생활이 있는 가정에 대한 향수이다.
▲현란한 밤거리를 목적없이 배회하는 십대나, 또는 우범지대의 그 음침한 뒷골목에 숨어 어떤 악회를 꾸미는 악동이나 모두 과연 「사랑의 종」이 울릴때 저들의 가슴속에 떠오르는 그 가정의 영상은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은 아예 부를 염두도 안내는 그 「사랑의 종」이고 보면 아직은 순수하고 또 지극히 민감한 그 시절의 감수성에 호소하여 효과를 바라는 것일텐데, 그렇다면 거리에 마치 사열하듯 늘어서있는 저열하고 무치한 온갖 난잡한 선전 「포스타」, 외설잡지, 소설·만화 그 퇴폐적인 인간형상의 어마어마하게 확대된 극장간판 아래서 저들이 어떤 것을 생각할지 상상도 못했단 말인가?
▲모 고관이 그자녀의 담임선생을 전화로 초대하자 그 선생이 이를 거절했다. 그 고관은 이 거절이 뜻밖이라 혹시 자신이 누구인지 잘못 알지않았나 다시 직함을 대자 그 교사가 누가 그걸 몰라서 거절하느냐고 호통을 쳤다는 이야기를 모중학 교사로부터 들었다. ▲이것은 근래에 드문 쾌담이지만 권력층이 사도(師道) 마저 매수하고, 일부 교사 또한 권력과 재물에 부화되는 이런 사회에서 자라는 소년들이, 장차 의식하고 지향할 가치기준이나 선악의 원리조차 모호한 것도 사실이다.
▲『그대는 활(弓)이고 그대의 자녀는 살아있는 화살로서 그대로부터 날아가리라』란 말이 있다. 과연 청소년들은 그 부모의 올바른 겨냥에 따라, 장차 놓여날 사회의 올바른 정의에 따라 미래의 인류역사의 과녁을 똑바로 적중하게 될 것이 아닌가. ▲기성세대의 자숙과 사회개선이 없는 한 「사랑의 종」이 아무리 울린대도 10대 소년들의 선의의 심금을 울려줄 것 같지는 않다. 「사랑의 종」소리가 오히려 그들에겐 「미움의 종」소리로 저주스럽게 들리지않을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