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우셜콘스트」()SOCIAL CONST)란 말을 처음 듣고 반사경자는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다. 이야기를 이어 가다보니 그게 「사회의 윤활제(潤滑劑)」 곧 뇌물임을 알게되었다. 교원이동에 있어 갑지(甲地)로 가는데는 얼마, 초임발령을 받는제는 얼마라는 공정가격이 매겨져 있다는 일간지의 보도이고 보니 「소우셜 콘스트」라고 할만도 하다. ▲그것뿐이랴. 요사이 신문을 펼치면 주먹만한 활자들이 눈에 뛰어든다. 글자의 모양은 틀릴지라도 그 내용은 엇비슷하다. 「철도청부정」 「메사돈사건」 「가짜분유」 등등. 이루 헤알릴 수 없을만큼 많다. 그렇다고 이것뿐일까? 어쩌면 이것들은 빙산일각에 불과할 것이다. ▲악의 권세가 이토록 창궐하고 있는데도 이와 대적하며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세상의 소금, 빛이 되어야 할 그리스도자들은 어떤가? 신앙과 현실이 서로 유리되어 있지는 않은가? 또 이같이 큰 악의 권세에 대해 자신의 무력감을 절감치는 않는가? ▲너 나 할 것 없이누구든지 그자리에 앉으면 정도의 차는 있을지 모르나 모두가 비슷해진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화려한 생활과 안일을 옆으로 밀치고 악의 세력과 대적할 수 있는 자는 내세(來世)를 믿는 곧 신과 신의 정의로우심을 믿는 자들 뿐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구태여 세상에서 귀찮은 십자가를 질 까닭이 없을 것이기에. 그래서 칸트는 신을 요청했는지 모른다. ▲신자면 누구나가 순교를 최상의 영광으로 삼는다. 피를 흘려 주를 증거하는 것만이 순교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의 일상생활 가운데서 당하는 작은 희생도 그와 못지 않게 값있는 작은 순교일 수 있다. ▲반사경자는 어느 신자가 인사원을 가진 요직에 있다가 너무나 청렴하다는 이유로 두달만 더 있으면 교장자격을 얻을 것인데 교감으로 내 쫓긴 사실을 알고 있다. ▲세상은 이 사람을 바보라고 한다. 누가 더 바보일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가 올바른 신자생활을 하자면 이같은 무수한 작고 큰 십자가를 만나게 될 것이다. 아무런 타산없이 이 십자가를 지고 이 순간에도 「골고타」로 달음질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뒤를 따를 때 우리는 만유감 없이 세상의 소금, 빛이 될 것이며 아울러 우리의 사회는 밝고 명랑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