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침한 불빛 아래 만원이된 버스안의 승객들은 한결같이 피곤한 모색이다. 기름때가 꾀죄죄한 차장도 진종일의 고함에 지쳐 이젠 말대신 버스 배를 주먹으로 쾅쾅쳐서 발차 신호를 한다. 어느 지점 에서 한 중년 부인이 짐을 들고 버스에 올랐다. 가까이 있던 10대소년이 일어서서 억지로 사람사이를 비집고 부인을 앉힌다. 이러한 버스안에서의 청소년들의 자리 양보는 허다히 볼 수 있는 일이요. 또 오래전부터 생긴 하나의 관습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작은 미덕이라도 대수롭잖게 생각하고 값헐케 넘겨서는 안된다.
▲이들의 순수한 선의에 대하는 사람들 또한, 이를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칭찬하는 마음을 가짐으로써 이친절과 감사는 무언중에 교류되고 조화된다면 또 다른 선행을 낳는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미덕의 씨는 비단 버스속에서만 국한된 하나의 인습화된 미덕에 끝나지않고 어느사회 어떤시기 또는 남이 안보는 은밀한 곳에까지 옮겨가 자라남으로써 보다 더 큰 선행 나아가서 사회정화의 한 동인(動因)이 되도록 조장돼야 할 줄 안다.
▲선행은 결코 강요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있어야할 자리 또한 능히 기대될 수 있는 자리에서 그것이 외면을 당할때 그것은 단순한 선의 결여가 아니라 악행자체와 마찬가지로 철면피하다. ▲가령 40대의 남성이, 혹은 30대의 부인이 그의 앞에 한 노인이 노구를 가누지도 못하고서 있는데도 불구하고 끝내 못본척 외면하고 있다면 이는 우리사회의 어른들이 이런 작은 선행(큰 선행엔 과감한지?)엔 너무 일찍 단념하는 조로증이 있거나 수범정신이 전혀없는 탓이리라. ▲그런데 오히려 어른들은 『이즘 젊은이들은 도무지…』 하면서 젊은세대들의 발랄한 행동거지에 대해 세상이 곧 말세나 된것 같이 장탄식 한다. 『우리는 「대까당」 시대에 살고 있다. 청년은 타락하고 옛날부터의 진리를 믿지 않는다. 이러한 증후로 미루어 보아 가까운 장래에 세상의 종말이 예측 된다』 이 말은 4천년전 에짚트의 묘비에서 인용된 말이고 보면 기성세대의 새세대에 대한 노파심은 고금동서를 초월해서 존재하는 모양이나 인류가 아직 건재하는걸 보면 세상은 인간마음데로 그리 쉽사리 요정이 나는게 아닌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