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재시기를 맞이한지도 벌써 석주일이나 되었다. 봉재시기는 「봉재」(封齋)라는 그 말의 뜻대로 재계(齋戒)로써 봉해버리는 극기와 희생의 시기이다. 아니, 죽은 다음 무서운 연옥의 보속을 미리 세상에서 치루고자 하는 일년간의 영신생활을 결산하는 때이기도 하다.
그런데 금년 사순절이 시작되는 날 우리는 대소재가 완화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것은 결코 현대인들이 그만큼 죄가 가볍기 때문에 보속의 내용이 줄었다는 뜻은 아니다. 옛날과 다른 오늘의 사회적인 여건을 참조하여 외적인 희생보다 더 깊은 내적 극기를 중요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소재의 대폭 완화의 특전을 받은 우리는 그만큼 내 영혼의 내적 희생이나 극기에 주력해 오고 있는가? 대소재의 계율이 완화된 그만큼 우리는 더 많은 성로신공이나 더많은 애긍시사나 더 많은 내적신심에 주력하고 있는가? 아니면 대소재 계율의 완화와 함께 옛날처럼 대소재를 지킴으로 해서 느껴지는 「보속하는 사순절」의 개념마저 잃어버리고 말았는가?
아름다운 사회풍조는 하나씩 사리지고 불륜의 풍조가 고개를 드는 이 시대에 우리네 영신세계에도 아름다운 사순절의 전통은 사라지고 있지는 않는지 저으기 우려되기도 한다. 우리는 「현대식」이니 「신식」이니 해서 비판력을 상실하고 무조건 사회사조에 편승하고자 하는 정신을 뿌리채 뽑아야 하겠다. 현대식 보속이라해서 극기 희생의 필요성을 부인해도 좋단 말인가?
일년에 한번밖에 없는 사순절을 뜻없이 보내지 말아야 하겠다. 풍성한 주님의 성총을 남용하지 말아야 하겠다.
해가 있을 때 일 할 수 있고 해가 떨어지고 밤이오면 일할 수 없다고 하신 그리스도의 교훈이 새롭게 느껴진다. 지금은 성총의 때요 지금은 구원의 때라고 외친 바오로 종도의 말씀도 더욱 새롭게 느껴진다.
사순절 첫날 머리에 재를 얹을 때 우리는 무엇을 생각했던가? 우리가 뜻했던 좋은 결심이 어느뜻 허물어지고 말았는가? 사순절 중턱에 앉아서 그동안 내 영혼 걸어온 길을 다시한번 살펴보고 앞으로 가야할 길을 새로이 다짐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