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나를 모욕하는도다.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되, 구하여 주시고 판단하여 주실 이가 있느니라. 진실히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 만일 내 말을 준행하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으리라』(요왕 8,49-51)
그리스도는 진리이다. 진리를 그리는 자는 당연히 그리스도의 말씀과 생각과 행위를 자기의 것으로 하여 영적 변신(靈的變身)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 노력이 진지할수록 올찬 믿음이 영혼 속에 깊숙이 뿌리박힌다. 그렇게 믿음이 뿌리박힌 영혼은 이 고난절에 「선민(選民)」이 버린 그리스도 옆으로 다가선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사람들로부터 명예를 얻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모욕을 당하려고 오신 이유를 알기 때문이다. 그 이유 속에 자기 인생의 이유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천주의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이유이다.
그리스도는 생명이다. 번번이 속념(俗念)만이 가득 차곤하는 머리, 물질적 탐닉(耽溺)으로만 기울이곤 하는 마음, 빛을 피하는 눈, 반신적(反神的)인 유리(遊離)에 재미붙이는 손발, 이런 것들을 스스로 죽이고, 대신 자기의 몸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타나기를 희원(希願)하는 사람은 이 고난절에 신고(辛苦)하시는 그리스도를 부축해 드리면서 당신의 처절한 고독을 자기의 고독으로 삼는다.
당신은 고난과 죽음이 눈앞에 다가올수록 더욱 당신의 아버지께 의지하셨다. 우리도 당신과 함께 『아버지는 나의 힘』이라고 부르짖어야 한다. 그러면 천주께서는 당신의 구원계획과 그리스도의 신비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얼마나 되는가를 우리에게 깨우쳐 주신다.
그리스도는 길이다.
천주께서는 당신의 아들 그리스도로 하여금 우리를 위해 죽게 하심으로써 우리 인간에 대한 당신의 사랑이 어느 정도인가를 증명하셨다. 이 사실을 명념(銘念)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랑에 사랑으로 보답하고자 하는 사람은 고난절을 맞아, 『내가 마땅히 받을 바 세(고난과 죽음)가 있으매, 이를 마칠때까지 나는 어떻게 마음이 조이는고!』하신 그리스도의 길을 간다.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당신의 간난(艱難)의 참된 동반자가 된다.
나무로써 이긴 자를 나무로써 압도하였던 갈바리아의 제헌이 올해오 다가오고 있다. 신약의 대사제이신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제물이 되신 인류 대속죄의 제사가 다시 다가오고 있다. 염소나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흘린 당신 자신의 피를 가지고 하늘의 지성소(至聖所)에 들어가 영원한 구원을 얻어 주신 제사이다. 고난절은 단순한 기념시기가 아니라, 우리의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거듭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천주를 섬기게 하는 「새로운 현실」이다.
우리와 많은 사람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그리고 우리를 천주의 은총 안에 살게 하기 위하여 흘려졌던 피가 다시 새로이 흘려진다.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게 우리 자신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재헌해야 한다.
이사악처럼, 우리자신을 불살라버릴 나무를 스스로 등에 짊어지고 주님의 뒤를 따라 갈바리아에의 길을 가야 한다. 그리스도의 수난에 참여할 때가 왔다.
바오로 종도는 말했다.
『그리스도의 수난하심의 남은 바를 그이의 몸이신 교회를 위하여 내몸으로써 보충하노라』
역사적 그리스도 수난하심의 남은 바를 그이의 몸이신 교회를 위하여 내몸으로써 보충하노라.
역사적 그리스도 수난의 구속 공로는 무한하다. 그러나 신비적 그리스도의 수난은 그 신비체의 모든 지체들이 각각 천주께서 정해 주시는 분량만큼 그리스도와 더불어 수난하여야만 비로소 완전해진다.
그리고 이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그 영원한 생명을 더불어 향유(享有)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길이다.
金允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