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강산을 초토화하고 민족상잔의 비극을 빚어낸 6·25동란이 일어난지도 어언 15년이 되었다. 한국민이면 누구인들 공산침략으로 인한 이 민족적 비극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통념의 「기념일」과는 달리 무엇을 기념하기에 앞서 우리는 아직도 슬픔과 분노와 애통을 금할 수 없고 악몽만을 되새겨야 하는날이 이날이다.
동란 15돌을 맞으면서 정부·정당·언론기관·각급학교 기타 공사(公私)단체를 막론코 어디서나 그 비극의 날을 추념하는 기념식이 거국적으로 거행될 것이다.
다시금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쟁취하고 국토의 마지막 한뼘이라도 공산침략에서 막기위해 그 귀한 목숨을 바쳤는지, 또 얼마나 많은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고 얼마나 많은 가정이 파탄되었으며 도시와 촌락이 파괴되었는지 회상치 않을 수 없다. 동시에 우리는 어디서나 이날을 기하여 두번다시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게끔 방공정신에 투철하여지고 국토통일을 기필코 이루겠다는 다짐을 서로 굳게하게 될 것이다. 다 타당한 일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같은 날의 추념도 다짐도 이제는 어찐지 하나의 연중행사처럼 형식화되어가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민족의 최대염원인 국토 통일조차도 실효없는 구호같이만 들리게 되었다. 왜 그런가? 15년이라는 결코 짧지않는 세월이 그간에 흘러갔기 때문인가? 혹은 아무리 높이 외쳤자 우리의 힘만으로는- 적어도 현황에서는- 통일의 가망이 없다는 체념이 지배적이기 때문인가?
어떻든 6·25를 다시 뼈아프게 추억해야하는 이 시간에도 현실의 정치·경제·사회생활상은 국토가 분단되어있고 민족의 일부가 아직도 공산압제하에 신음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것처럼 여전히 사리사욕과 부패와 분쟁, 혼란만을 노출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 시간에 누구보다도 앞서 반성해야할 사람들은 우리들, 그리스도교 신자들이다.
우리들 역시 이점에 있어 더 나을 것은 없었다. 우리들 역시 남과 다름없이 이북의 형제들과 그 침묵의 교회를 거의 잊다시피 살아왔다고 아니할 수 없다.
금년부터 주교회의의 결정으로 북한동포와 그곳의 박해중의 교회를 위해 기구하는 주일이 정해지게된 것은 한편 다행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너무나도 때늦은감이 없지 않다. 그간에도 물론 많은 이들이- 이북출신 성직자나 신자들은 말할것도 없이- 북한을 위해 기구하기를 잊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전체교회로서는 이북을 망각한 것이나 다름없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물론 국토가 양단돼있고 분단의 운명에 놓여 있는 나라들 중에서도 어디 보다도 심각한 곳이 한국이라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 설령 어떤 고려가 있다하여도 사목적으로 아무런 영향력도 실제 기대할 수 없는 곳이 분단된 한국의 이북교회이다. 이는 문자 그대로 「침묵의 교회」이다. 몇 사람의 목자가 남아있는지 있다면 어디있는지 신자들의 현황이 어떠한지 전혀 알길이 없다. 가혹할 만큼 「철의 장막」속에 갇혀 있는 곳이 이북교회이다.
그러나 분단의 현실이 가혹하면 가혹할수록 이를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 우리의 그리스도교적 형제정신일 것이다. 국토가 아무리 양단돼있다 할지라도 다른 이들에게는 몰라도 우리의 그리스도교적 정신, 우리 마음, 우리의 신앙생활태도에 있어까지 나라가 두 쪼각이돼있고 민족이 분열되어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과 정신에 있어서는, 우리는 그리스도교적 사랑에 있어서는 나라도 민족도 여전히 하나이어야하고 그렇게 우리는 언제나 의식하고 살아왔어야 했을 것이다.
이같은 당위(當爲)에 비해서 한국교회는 다른 기회에 있어서도 지적한바와 같이 아직도 너무나 강하게 지방색과 개체주의에 지배되고 있다. 그것은 어디서보다도 교회사목정신과 그 실천에 있어서다. 가톨릭이란 전세계, 아니 전우주를 그 마음에 포옹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와 같이 모두들, 원수까지도 형제로 받아들이고 사랑으로 감쌀 수 있는 마음의 넓이를 가져야 한다.
그렇다면 민족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더구나 같은 그리스도의 신비체에 지체되는 동포와 형제인 이북교회가 수난중에 있었는데도, 일년이 아니고 10년, 10년이 아니고 어언 20년이 다되도록 고통과 시련중에 놓여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제야 겨우 그들을 기구중 공적으로 기억하게 되었다는 것은 실로 부끄러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는 오늘날 그들을 위해 다만 기구할 것만이 아니다. 그들의 눈물을 우리의 눈물로 알고, 그들의 십자가를 우리의 십자가로 알아야한다. 비록 육신으로는 그들과 함께 있지 못할지라도 그들과 우리를 하나로 결합시키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과 함께 울고, 함께 이 민족의 구원의 십자가를 지고가야 할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교회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서로 기구하자! 이들은 비록 사상적으로는 우리의 원수이고 우리교회의 박해자이나 역시 우리의 동포요 우리의 형제들이다. 그리스도는 그들을 위해서도 십자가에 죽으셨음을 그리고 그들의 죄의 사함을 위해서 성부께 빌으셨음을 우리는 잊지말자. 그리하여 비록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는- 현재- 그 가능성이 희박하다 할지라도 우리 민족의 합일과 남북통일이 하루빨리 성취될 수 있게끔 사랑을 실천하고 간단없이 천주의 도우심을 구하자! 만사에 있어 결정적인 것은 인간의 힘이 아니다. 천주의 은총이요 그의 권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