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인자하신 네 왕이 멍에 메는 암나귀와 새끼 수나귀를 타시고 네게 오신다.』 (마테오 21·8 , 자카리아 9·10)
포도원 울타리를 끼고 돌며 혹은 올리브나무들 사이를 빠져나와, 스승이 앞마을에 가서 나귀를 끌고오라 하시고, 또 분부대로 탈만한 짐승이 정말 끌려왔을 때 제자들의 심장은 뛰었다. 그것은 성지주일을 맞는 모든 그리스챤의 심장의 고동이다.
예언은 어김없이 이루어졌다. 예수께서는 나귀를 타시는 겸손한 평화의 왕이었다. 그러나 죽은 「나자르」를 돌무덤 속에서 불러냈듯이 우리를 죄의 무덤 속에서 불러내기 위해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해방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성지주일에 거창하게 무리(群) 지어 흐르는 개선행렬에 끼어 우리는 환호한다. 『호산나!』 -우리가 『잠잠할 양이면 돌들이 소리를 지를 것이다.』
시온의 딸 「예루살렘」에 우리도 그리스도왕을 따라 입성(入城)해야 한다. 빨마가지와 꽃다발을 흔들며 구원에의 갈망으로 타는 목청을 가다듬어 외쳐야 한다.
『땅에서는 평화, 하늘 높은 곳엔 영광!』 그리고 다른 것은 그만두고, 당신이 가시는 길에 우리의 사랑만은 꼭 깔아드려야 한다. 충성과 헌신의 「카피트」를 펴드려야 한다. 「우리를 돌아보시는 때」가 왔다.
성도(聖都) 입성이 십자가의 승리를 예고하는 것임을 우리는 안다. 지상의 개선이 하늘의 영원한 개선을 표상하는 줄도 안다.
무엇보다 그 승리의 개선을 위해 「어린 양」이 어떻게 희생되었는지를 우리는 잘 안다.
『아버지여, …내가 저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들 안에 있고 나도 저들 안에 있게 하기 위함이로소이다.』 (요왕 17·26)
이 말씀을 하시고 최후의 만찬 방을 나오신 예수께서는 종도들과 함께 「케드론」 골짜기를 건너 「젯세마네」 동산을 찾았다. 먼저 영혼의 십자가를 지고 피땀을 흘리셔야 했다. 예수님의 생애에 새로운 국면(局面)이 전개되었다. 자원하신 수난이었으나 무서운 고독이 당신의 인성(人性)에 덮쳐왔다. 무구(無垢)하신 몸으로 모든 이를 위해 자원하신 고난이기 때문에 더욱 영혼 안에 고뇌와 전율이 피어올랐다.
당신의 인성은 파탄(破綻) 직전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이때 하늘로부터 위로와 힘을 받으셨다.
『아머지의 원의대로 하소서』하고 기도하신 보람이 있었다.
신(神)에 대한 인간의 반역은 언제나 거짓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진리가 조롱되었다. 선의가 유린되었다.
예수께서는 때리는 자들에게 몸을 내맡기셨다. 쥐어뜯는 자들에게 뺨을 내미셨다. 우리의 악행이 채찍이 되어 당신의 살에 핏자국을 냈다. 우리의 고집이 가시관을 엮어 당신의 머리를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그러나 희생으로 바쳐지기 위해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입을 열지 않으셨다.』 아들을 속죄제물로 내놓으신 아버지의 뜻이 모든 곤욕(困辱)을 참아받게 하였다.
십자가를 진 예수님의 어깨를 우리의 죄악, 벼옥, 비애가 잔인하게 짓눌렀다. 그러나 당신은 오히려 우리 「마른 나무」들의 앞날을 걱정하셨다.
사뭇 찔리고 으스러지면서도 우리를 위해서는 「입을 여시어」 하늘의 아버지께 용서를 청하셨다. 옆구리와 손과 발에서 영긴 피가 겹쳐 미끄러지며 천천히 흘러내렸다. 피는 십자가의 기둥을 따라 땅으로 흘러서 온 세상으로 번져나갔다. -『이제 마쳤도다.』-
업(業)은 이루어졌고, 구약의 휘장은 갈기갈기 찢어졌다. 「바스카의 어린 양」은 하늘의 아버지로부터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받으셨다.
-올해도 그리스도왕은 사흘만에 부활하신다. 그 승리의 영광에 우리도 참여할 것이다.
金允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