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협정조인과 함께 정국(政局)은 다시 불안과 격돌의 소용돌이에 빠져있다. 「데모」의 열풍, 거기다 가뭄과 더위마저 겹쳐 민심은 극도로 메마르고 내일과 모래의 사태발전이 우려스럽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 타협이라고는 모른다는 것이 우리 정치인들의 생리인지 정부와 여당은 협정된 조인의 이제 남은 비준과정에도 여전히 독주를 감행할 기세이고, 야당역시 「굴욕외교, 매국외교」만을 외치며 전면거부의 극한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그 가운데끼여 국민은 갈피조차 잡지 못한다.
참으로 슬픈일이다. 슬프다는 것은 여·야가 대화없이 극한 대립을 해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백성이 이탓으로 곤욕을 겪고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아이로니갈」하지 않는가? 어제까지는 원수였던 남과는 화해의 길이 열렸다. 그러나 집안은 그때문에 두갈래 세갈래가 날 판국이다. 또 하필이면 그것이 여·야도 없고 정부와 국민의 차도 없이 찬·반 어느쪽이든 거족적으로 대해야할 일본과의 일에 있어서다.
한일협정조인은 정부나 여당이 말하는 대로 외교정치의 성공이요 역사적 경사일는지 알수 없다. 그러나 그것과 함께 일어난 이 난국(難局)은 분명 경사스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이것은 민족적 불행이요 자칫하면 국운(國運) 조차도 해칠 수 있는 큰 위기이다.
우리는 한일수교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히려 선림(善隣)을 권장하고 원수까지도 용서해줄 수 있는 아량이 우리민족의 마음되기를 희구한다. 따라서 일본이 우리의 숙적(宿敵)이었다는 사설과 그들에 대한 우리의 민족적 감정이 쉬이 풀릴 수 없음을 시인한다할지라도 호혜(互惠)를 위한 것이라면 그들과도 단순한 수교 이상으로 손잡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또한 방공전의 유대강화, 세계평화에의 기여를 위해서도 한일간의 국교정상화가 현시점의 역사적 요청임을 인식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우리는 야당의 저항에도 이유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굴욕·매국외교」라고 외치는 그 극단적인 치매에는 동조하지 않는다. 국민의 「반정부」 비판이 곧 「반국가」 행위일 수 없듯이 정부의 외교정치자세에 더 구체적으로 이번 한일협정내용에 다소의 양보가 있었다해도 그것이 곧 「매국적」과 동일시돼야할 것도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우리는 「매국적」 「매국노」라는 낱말이 오늘날 우리사회에 남용되고 있다고 판단하며 지난날(혹은 아직도) 걸핏하면 「빨갱이!」하고 무고한 사람까지 몰아치는 「맥카시즘」에 대해서와 같이 혐오마저 느끼는 바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호의적인 자세에도 불구하고 한일협정조인을 정부 및 여당과 더불어 함께 즐길수는 없다고 확실히 말해두지않을 수 없다. 그것은 그 협정조인에 수반된, 격시한 정국의 혼란 탓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주권자인 국민이 시종 여기에 불참돼있었기 때문이다.
이 국민불참은 야당의 지지나, 한일수교자체에 대한 국민일반의 무관심에서 결과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비록 그것을 정부나 야당의 일부 정치인들처럼 국가백년대계를 위해 절대 필요한 것이라고까지 생각하지는 않더라도 장차의 국민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국민은 당연히 여기에 참여할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정부나 집권당은 이 권리의 요구를 채워줄 의무를 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불참이라면 그것은 누구의 탓인가? 한일수교가 어떠한 양태하에 진전돼가고 있는지 국민일반이 그 내용을 파악하고 있지못함을 정부나 여당이 그간 모르고 왔을리 만무 하다. 그것은 과거 수개월간의 신문을 훑어만 보았어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국민은 차치하고라도 정치식견이 높은 언론인들까지도 한일회담에 대해서만은 조인직전에 이르도록 그 진상파악을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여당은 이날까지 한번도 성의있게 국민의 알고 싶은 마음을 충족시켜준 일이 없다. 정부는 물론 거듭 P·R하였다. 그러나 일방적 P·R은 통념의 자가선전에 불과하다. 그것이 곧 국민의 물음에 대한 답일수 없고 그것을 우리는 객관적 해명이라고 볼수 없다. 특히 청구권의 내용, 화선문제 등 쟁점(爭点)에 대하여 국민은 과학적 객관성을 띤 해명을 정부에 촉구해 왔다. 그러나 인간은 국민의 원의, 아니 국민의 당연한 권리를 정부나 여당은 시종 애매한 태도로 냉대하여 왔다.
오히려 반대로 무엇때문인지 알수없으나 가조인때나 이번 정조인때나 정부는 마치 무엇에 쫓기듯 타결에만 조급했었다. 한마디로 정부와 집권당은 국가적으로 뒷 영향이 크고 전민족의 관심이 집중돼있는 한일수교타결에 국민과의 진정한 대화없이 지나치게 독주하고 말았다.
무슨 까닭인가? 항간의 풍설같이 정부와 여당은 국가의 이익보다 정권연장을 위해 한일수교타결에 임한 것인가? 그래서 그렇게 성급히 서둘렀던 것인가? 우리는 이것을 한 갓 억측에 불과한 것으로 밀고 싶다. 왜냐하면 그것이 억측이 아니고 사실이라면 그 이상의 배신이 없고 너무나 통탄할 일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한일수교조인을 끝맺고 우리를 향해 주체성을 지닌 국민되라고 당부하였다. 실로 동감이다. 뿐만아니라 우리는 민주주의 체제하의 국민다움게 그 주체성을 발휘해야 할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나라 주권자인 국민으로서 정부와 여당이 「다수의 힘」 만을 믿고 한일협정의 국회비준을 국민의 진정한 참여 없이 감행할려는 태도에 엄숙히 경고한다. 왜냐하면 그같은 독자적 행위는 현정국을 더욱 어지럽게 하고 민족적 불행마저 초래할 염려가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와 여당은 비준을 서둘기에 앞서 국민이 그 가부결정에 임할 수 있게끔 즉시 그 길을 열라! 그것만이 이 난국을 구하는 유일한 방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