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음을 앞둔 나의 아내」가 대세(代洗)를 받은 후 도저히 이해못할 정도로 신앙안에 만족하는 것을 보고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도 마침내는 천주님을 섬기게 되었다.
나는 본래 선조때부터 믿어오던 불교도였다. 그리고 수년전부터 여러 친우들로 부터 예수교에 입교하라는 권고를 많이 받았다. 나는 선조때부터 신봉해온 탓인지 불교를 버리고 싶지 않을뿐 아니라 예수교는 서양교이고 동양사람은 불교를 신봉해야 한다는 생각에 완강히 반대하였다.
그러던 중 우연히 중병으로 입원해있던 나의 처가 완치할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퇴원하였으니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참으로 눈앞이 캄캄하고 정신이 아찔하였다. 그러나 나의 처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조금도 불안한 안색이 없이 다음과같이 조용히 말했다. 『여보 나는 지금 죽는다해도 아무것도 두려울 것은 없어요. 나는 병원에서 수녀님에게 대세를 받았읍니다. 나는 이제 죽어도 천주님이 계신 천당에 갈테니까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당신도 하루 속히 아이들 다 데리고 성당에 나가십시오』했다.
사실 나는 대세가 무엇인지 알수도 없거니와 대세라는것이 무엇이기에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두려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래서 나는 고통중에서나마 평화로운 모습을 하고있는 처의 모습을 바라보며 천주교는 믿지않든 도대체 대세라는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당에는 아침 일찌기 무엇을 한다는 것쯤은 알기때문에 아직도 조용한 새벽거리를 걸으면서 부산진성당을 찾았다. 사실 성당문앞에 이르자 갑자기 나의 발은 무거워짐을 느꼈다. 그리고 성당에 들어갈 용기가 생기지를 않았다. 그래서 나는 성당 종각만 바라보면서 또 성당안을 기웃거리면서 얼마간이나 망서렸지만 찾아들어갈 용기는 생기지않아 그냥 돌아오고 말았다.
나는 집에와서 가만히 생각하였다. 그런데 어쩐지 『너는 용기가 없다』 『너는 참으로 용기가 없는 사람이다』하는 말이 귓전을 울리는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어 그다음날 다시 성당을 찾아갔다. 그리고 무엇인가 서먹서먹하고 불안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면서 수녀님을 뵙옵고 사정이야기를 대충 말씀드렸다. 그런데 수녀님은 어딘지 우리와는 동떨어진 별개사람 같으면서도 반가운 얼굴로 차근차근 이야기해 주시면서 서슴지 말고 성당에 나오라고 말씀하셨다. 이제야 나는 무엇인가 안도의 숨을 쉴수가 있었다.
나는 좌우간 천주교가 어떤 것인지 알아 볼수밖에 없다고 생각 하고 수녀님에게 내일부터 꼭 다니겠다고 약속을 하고 집으로 향했다. 벌써 사람들이 제법 분주하게 오가는 거리를 걸으면서 『나는 수녀님에게 대세를 받았읍니다. 당신도 그 내용을 잘알고 보면 기뻐할 것이요, 나두 아직까지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천주님을 공경해야 한다는 것만은 잘 알았읍니다.
나는 이제 죽거나 살거나 천주님을 공경하겠오. 당신도 아이들 데리고 성당에 나가세요』라고 말한 처의 말을 머리속에 뒤새기며 집에 이르자 나의 처는 내가 성당에 다녀왔다는 것을 알고 퍽 기뻐 하였다.
이렇게 하여 나는 6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교리시간과 매일 미사에 참례하였다. 이렇게하여 나는 천주님을 공경함으로써만이 인생의 보람을 찾을수 있으며, 천주교안에서만이 구령할수 있다는것을 알아 선조때부터 신봉해오던 불교를 버리고 가족 아홉명과 더불어 천주님의 자녀가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53년 동안이나 천주님을 모르고 지내온것이 부끄럽고, 이렇듯이 큰 죄인을 버리시지 않고 당신의 품안으로 온가족을 불러주신 무한히 인자하신 천주님께 감사드릴 뿐이다. 그리고 천주님께서 죄인에게 베푸신이 이 무한한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하여 남은 여생을 오직 천주님을 위해서 살고 아직도 불행히 참 진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천주님의 복음을 알려주는 것이 나의 마지막 소망이다.
趙命祚(부산범일본당 신자(1965년 6월 6일 성제를 받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