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리」를 방문하는 사람치고 미(美)의 화원(花園)인 「루부르」박물관을 구경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하며, 그곳에 진열된 20만점의 미술품 중에서도 방문객들의 시선을 제일 많이 쓰는 것이 다반치의 「모나리자」라 한다. 신비로운 미와 매력의 「심볼」이며, 영원한 수수께끼같은 「모나리자」의 멋이 사람들의 심혼(心魂)을 사로잡아 발길을 멈추게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눈만이 아니라 마음을 즐겁게 하는 원숙하고 품위있고 격높은 멋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고결하게 순화시켜준다. 어떤 친구는 우울하고 마음이 불안, 착잡할 땐 항상 어느 수도자를 찾아 먼발치서 그의 멋을 보면 힘과 평온을 얻는다고 실초했다. 하늘을 우러러 보아 부끄러울 것이 없고 사람에게 대하여 부끄럼이 없는 수도자의 모습에는 고요하고 평화스런 그리스도자의 멋이 풍기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사랑이요 기쁨인 그리스도자이 멋(평화) 속에서 그는 신의 사랑을 발견하는 것이다. ▲멋은 사치와 전혀 다른 것이다. 멋이란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이해관계를 떠난 풍치와 여유, 조화와 아름다움과 참됨의 지상선(至上善), 지상미(美)를 지향하고 추구, 갈망하는 마음의 움직임』 이라고 정의한 말에는 대끔 수긍이 간다. 변화와 움직임이 있는 인생에는 저절로 멋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위대한 예술가와 학자의 멋이 다른 것처럼 멋은 그 사람의 오랜 생활사(史) 및 정신사(精神史)의 기록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자는 그리스도자로서의 멋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20세기의 고뇌를 제 혼자 따안은 것처럼 고개를 외로 꼬고 험상궂게 일그러진 침울한 그리스도자는 『너희는 평안할지어다』라는 그리스도의 인사말을 욕되게 한다. 그는 현실에 참여하고 있으면서도 실은 참여못하는 사람이다. 생활인으로서는 멋대가리 없는 사람이요 멋모르고 사는 사람이다. 『네가 십자가를 달갑게 지고 가면 십자가가 너를 지고 네가 원하는 곳으로 데리고 가리라』는 고통의 신비를 모르는 사람이다. ▲진정 그리스도자는 만방에 가서 복음을 전할 매력적인 그리스도자로서의 멋을 가져야 한다. 다빈치가 말못하는 「모나리자」의 미소 앞에 4년을 고스란히 바친걸로 보아 말하는 그리스도자의 멋을 갖기 위해서는 더욱 다양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아침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이슬처럼 신의 성총을 받아 생동하는 그리스도자의 멋은 지옥을 천국으로 만들만큼 위대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