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9일 주교품에 오른 초대 원주교구장 지주교님은 축하식석상에서 교구민(敎區民)에게 방인(邦人) 교구로서의 자립정신을 강조 하였다. 신설된 원주교구를 위해서나 바야흐로 방인교회로서의 비약적인 발전도상에 있는 전국교회를 위해서 우리는 이같은 자립정신의 강조가 가진 뜻은 크다고 보는 바이며 한국교회가 내일의 더 큰 발전을 기하기 위해서는 거듭 진작(振作) 돼야할 정신이라고 생각 한다. 가톨릭교회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하나의 교회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신비체(神秘體)이며 인종과 민족과 사회계급 기타 일체의 차별을 초월하여 그리스도를 머리로하여 인류대(人類大)의 생명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비록 여기서 다시 한국교회의 자립을 운위(云謂)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배타적이요 협소한 민족주의에 입각해서가 아님은 말할 것도 없다. 적어도 가톨릭교회안에서는 그런 의미의 한국교회, 미국교회 혹은 일본교회 등은 있을 수 없다. 뿐만아니라 마치 한 육체의 지체간의 상호관계와도 같이 그리스도안에 한 몸을 이루는 각국 교회내지 전세계 모든 교구는 상호간 끊을 수 없는 신앙과 사랑의 유대로써 맺어져있고 또한 서로 의존해 있다.
이 유대아래 결합함으로써 각국교회 내지 각 교구는 존립할 수 있고 성장해갈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불가분의 유대와 상호의존관계는 결코 각국의 개별교회(혹은 각 교구)의 자립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 몸의 건전한 성육 발전을 위해서는 그 각지체가 건전하고 부여된 기능을 충분히 발휘해야 하듯이 교회에 있어서도 전체교회의 융성과 성장을 위해서는 지체인 각국교회 내지 각교구의 건전한 성장발전이 요구된다.
한국교회는 오늘날 분명히 방인교회로의 발전을 비약적으로 이루어가고 있다. 비록 아직도 이 땅위에 많은 외국인 선교사가 있고 앞으로도 더 큰 인적 물적원조를 외부로부터 받아야할 처지라할지라도 남한만으로 11개 교구 중 7개 교구가 방인주교에 의해 사목되게 되었다는 것은 이같은 발전을 증명하고 남음이 있다.
한국교회의 발전은 성청에서도 인정하는바로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이번 원주교구설정칙서에서 『한국은 이제 구원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정도가 아니고 또한 교회들 중에서 화관으로 장식되나니』라고 고무적인 찬사를 아끼지 않으셨다.
정히 한국교회는 이제 그 초창기의 유아시절을 벗어나 발랄한 청년기에 들어서 있다. 남의 도움을 받아 조명해가던 그런 철은 이미 지났다. 이제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야할 때다.
따라서 우리가 이같은 한국교회의 자립을 위해서 무엇보다도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의타심(依他心)에서의 탈피이다.
이제까지의 전통과 습관에 의해 무의식중에도 외국의 원조 특히 물적 원조없이 어떻게 자립할 수 있겠는가하는 관념에 젖어있다. 이 관념을 우리는 먼저 불식해야 한다.
우리는 물론 가난하다. 그러나 가난하다는 이유 때문에 거지신세를 지속하지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있다면 그는 평생 자립할 수 없을 것이요. 죽는날까지 거지로 살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난을 극복하는 원동력은, 외부에서 오는것이 아니고 먼저 내부에서, 자기안에서 일어나고 그것은 자립하겠다는 정신력이다. 돈이없어 자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더 크게 결핍돼있는것은 실은 물질이아니요 정신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 한국교회의 자립을 아직도 막고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물질적 가난도, 신자수의 적음도 아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자립하겠다는 정신의 결핍이다.
동시에 그것은 우리들이 아직도 참되이 깊고 생활한 신앙에 살고 있지않음을, 성직자들뿐 아니라 신자인 우리 모두가 다같이 이 나라 안의 교회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신자들이 스스로를 교회로 의식하고 또 그렇게 살고 행동한다면 한국교회는 이미 자립해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한 교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예를들면 신설 원주교구는 가난하다. 신자수로 성직자수로나 어느 교구보다도 아직 약하다. 그러나 이같은 수적인 부족, 물질적 가난이 원주교구의 참된 자립을 막을 이유는 되지 못한다. 그 교구의 모든 신자들이 『원주 교구란 다른 무엇도, 어느 누구도 아니요. 바로 우리들이다. 원주시(市), 원성군, 영월군, 정성군, 삼척군, 울진군에 사는 너와 나 우리들 신자들이 원주교구이다』고 자각한다면 원주교구는 정히 정신적으로 자립한 교구인 것이다.
교회의 자립을 우리는 지나치게 물질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물질적으로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신자들이 참된 신앙과 교회의식(敎會意識)에 살고있지않으면 건물로서의 성당과 시설이 있어도 그곳에는 진정한 의미의 교회 즉 「천주의 백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와 반대로 물질적으로는 비록 가난하나 신자들이 다같이 신앙과 교회의식 및 사명에 투철해있고 전교를 하고 성당을 짖고 기타 필요한 시설을 갖추어야할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임을 자각하고 행동한다면 한국교회는 그야말로 명실공히 세계 모든 나라의 교회들 중에서 화관으로 장식되는 훌륭한 교회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같은 정신이 한국교회의 모든 신자들의 정신되기를 기원해 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