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의지를 잃은자, 인식의 용기를 상실한 지성인들이 체념의 철학을 배우는 것이 종교라고 정의하던 시절이 있었다. 세월의 흐름 속에 체험을 통하여 『謀事在人 · 成事在天』이란 세속의 진리를 어렴풋이 깨닫고 무한에의 향수를 느끼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성교회에 나가 천주님의 은총받은지 일년, 영세받고 성실한 신자생활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의문은 꼬리를 물고 현실에 대한 집념은 쉽사리 버릴 수 없었다.
교리 · 예배의식 등 허다한 의문에 해답을 구하고저 독서와 기구로써 신앙의 지름길을 찾기위해 힘썼으나 신비 · 계시 · 교훈 등 초합리적 요소때문에 논리적 근거를 찾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이해하기조차 힘들었다. 사색의 굳은 장벽에 부닥칠 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하이만 멜빌이 쓴 백경(白鯨)이다.
대양을 누비며 오직 거대한 흰고래를 잡고저 필사적으로 쫓고 있는 에이하브 선장의 불굴의 투지와 신념, 그러나 끝내는 포경선은 물론 에이하브 선장까지 희생되고 흰고래는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유유히 사라지는 내용이다.
우리가 천주님의 섭리를 들추워 내려는 것은 마치 에이하브 선장처럼 무모한 도전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제 영원한 제 진리를 인식하는 것은 「신의 빛」에 의하여 가능하나 신 자체를 완전히 인식하고 직관하는 것은 인간의 사유로써는 불가능하다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씀을 이해할 것 같다. 헤겔도 『우주의 본질은 인식의 용기앞에 문을 열어 그 냉요과 바닥을 눈앞에 보여주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호언장담 하였지만 끝내 자연깊이 숨겨진 비고를 파헤치지 못한채 사선을 넘어 불귀의 객이 되었다.
대우주의 운행, 자연속에 담겨진 생명, 생각할수록 상상을 초월한 위대한 창조주의 전능이 아니고선 이룰 수 없는 참으로 위대한 대작품이 안전에 전개 됨에도 과거도 현재도 먼 미래도 천주를 부정하고 항거하며 학문의 대상으로 여길 에이하브 선장은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며 믿음과 회의속의 방황하다 지쳐 쓰러질 수많은 영혼, 또한 많을 것이매 죽엄의 길을 피하고 영생의 대열에 참여하여 회의보다 믿음을 이론보다는 기구에 힘쓰고 사랑과 주를 명상하는 참된 생활이 신앙의 지름길이 되리라 믿으면서 마음속으로 「종도신경」을 외우니 돌을 맞은 평신도의 마음 한결 가벼워지는 듯 하다.
徐廷守(淸州 北門路본당 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