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만 한국가톨릭인들뿐 아니라 전 한국인들의 관심사였던 주교회의는 예정대로 지난 5월 14일 폐막되었다. 우리가 벌써 예견했던대로 너무 방대한 문제와 분비 부족으로 그 깨끗한 결말을 짓지못하고 「6월 속개」라는 또 하나의 관심사를 남겨 놓은채 일단락 짓고 3천8백자에 달하는 주교단 교서를 발표했다.
한국 가톨릭의 최고 수뇌들인 전국 주교님들의 「브레인」에서 신중히 나타난 동 교서를 우리는 마음을 가다금고 읽지 않을 수 없었다. 교서를 읽을 때 실로 한마디 한마디 지당한 말씀이었고 고무적이요 희망적이요 흐뭇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동교서 서두에 『이와같은 공의회를 우리가 한밭 역사적 사건으로 돌려 다만 그 아름다운 추억을 다소 간직함으로써 만족할 수는 없다』고 했는데 한국공의회의 주인공들이요 공의회를 실천할 「키」를 한 손에 쥐고 있는 주교님들의 교서에서 이런 마이 나온 것은 실로 쌍수를 들어 환영받아야 할 일이다.
왜냐하면 벌써 이 나라에는 공의회가 한낱 아름다운 추억화(追憶化)의 골동품이 되어가는 위기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공의회가 끝난지도 벌써 반년이 접어들지만 한국주교단에서는 아직도 공식적인 공의회 율령의 가르침이 한번도 없었기에 이번 공동교서는 동교서가 지적한대로 일종의 행사시(行事視)하는 신자들을 각성시키기에 충분한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동 교서에서는 또 다시 『누구나 공의회가 가르치는 것과 결의한 바를 실천에 옮겨야 할 때는 바야흐로 이르렀다.』고 했다. 여기서 우리는 스스로 문책해보고 싶다. 누가 먼저 공의회를 가르쳐야 하고 누가 먼저 실천에 옮기는데 선두에 나서야 할 것이냐? 지휘관의 치밀한 계획성 아래 지휘관의 명령이 없이느니 군대가 움직일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이번 공의회의 진수를 알아듣고 강력한 계획과 치밀한 조직하에서 이것을 실천해야 함을 다시 다짐하고 공의회의 가르침대데 사목자와 신자가 명실공히 한 형제로서 천주의 백성으로 일치해야 함을 자각한다.
공의회의 바람이 불어오더니 본당마다 미사는 제가끔 다르게 바쳐지고 교회일치라는 명구를 내세우면서 가톨릭 지성인들중에도 주일미사 참례 대신으로 프로테스탄의 에배 참예로 주일 의무를 다한 것처럼 빈정대는 꼴이라든지 공의회가 계기되어 과도기적인 혼란이 뒤끊고 있는 이때에 우리의 현실을 통감하고 조속한 지도력의 발휘를 기대하여 마지 않는다.
또 다시 동교서에는 『만약 이러한 뜻의 교회의 현대화가 성취되지 않으면 이번 공의회는 실패한 것이다』고 하면 공의회의 성패여부를 어느 누구에게 문책하는듯 한데 공의회이 성패여부를 누가 좌우하는 것이냐? 지휘관들의 명확한 명령이나 실천 하나 없이 아랫사람들의 거동을 판단 비판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절망하지 않는다. 동교서의 결론은 『한국교회의 사목책임을 진 우리 주교단은 공의회의 혜택을 충만히 받기 위하여 모든 배려와 노력을 이에 집중시킬 것이다』고 했으니 새로운 각광을 받을 한국가톨릭이 전도을 빌어마지 않는다.
여기서 사족을 붙인다면 장문의 교서에서 금번 병인년 순교 백주년에 대해서 79위 복자의 시성과 공동교서의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것 외에는 구체적 계획이 아직도 서있지 않았음은 섭섭한 일이다. 그외 『복음전례의 빛나는 역사를 지니고 있는 교회신앙을 피로써 증명한 조상을 가진 교회, 무신주의에 용감하게 대항한 교회』라고 했는데 올해의 역사적인 의의와 그 의의를 되살려 다시한번 이 나라의 복음전파에 주력하는 거국적인 사건, 에컨대 순교백주년을 맞이하여 몇년의 계획을 목표로 신자배가운동이라든지 이런 기회에 한국가톨릭의 빛나는 역사를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거국적인 순교정신앙양의 거사라든지 등등의 내용이 다음 교서에 구체적으로 언급될 줄 알고 기대하는 바이다.
그러나 이와같은 큰 행사가 6월회의에서 논의된다 해도 그것은 언제나 준비 부족으로 시기를 놓치는 우리들의 결점을 생각해 볼 때 6월에 준비를 했다가는 금년에 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인 것 같다.
경향 각지에서 병인순교 백주년 기념성당 건립을 추진한지가 벌써 오래였지만 몇교구를 제외하고는 황소걸음을 면치 못하고 드디어 용두사미의 격이 되고 말아 백주년과는 뜻없는 백일년 아니면 백이주년에 가서 준공을 보게될 테니 우리 가톨릭은 이렇게 현실을 현실대로 살지 못하고 말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할때 착잡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어찌되었던 한국교회의 공의회는 새 교서에 훌륭한 청사진을 그려놓았다. 우리는 그 앞에서 국외의 존재처럼 서성거리지 말고 전국 70만 가톨릭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주교단의 가르침대로 생활하고 묵상해야 할 것이다. 어느 누구에게로 책임을 전가하기 전에 다같이 공동책임을 느끼고 이나라 이민족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적 증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