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유례없는 파란이 예상되는 제51회 임시국회는 드디어 막을 올렸다. 한일협정 비준을 앞두고 여·야는 한결같이 통과강행과 결사 저지로 맞서있다. 그 어느 편이 승리하든지 의회정치는 파탄을 면치 못할 것 같다. 정국은 실로 암담하다. 작금은 일부 종교계에서까지 한일협정반대 혹은 구국기도회를 열게됨으로 민족의 위기에 처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한국민이면 누구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이 사태를 침통해할 것이요 겨레의 앞날을 우려치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에 우리는 국민된 입장에서 방관할 수 없으며 먼저 이 사태에 대한 정치인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이같은 사태의 책임의 중요한 부분이 그들에게 있고 해결의 관건 역시 결국 그들손에 쥐어져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여·야 정치인들에게 묻고싶은 것은 이같은 극한 대립이 진정 그들이 언제나 외치는 애국적 행위이냐하는 것이다.
사회와 민족의 안녕을 어지럽게 하면서까지 아집에 사로잡힌 것이 정치행위이며 나라를 위한 소치냐? 이것이 국민을 대변한다는 국회의원들이며 이것이 국가를 위해 헌신한다는 정치인들이냐?
우리가 보건데는 오늘날의 정치인들의 태도는 나라를 위한 것도 정치행위도 아니다. 아니 그것은 정치이전이요, 정치이하이다.
국민이면 누구든지 오늘의 이 막다른 골목에 이른 정국을 구하는데는 돌파구가 필요하고 그것은 여·야간의 당리당략을 초월한 협상임을 절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 당사자들인 여·야 정치인들은 다른점에는 다 의견을 달리 하면서도 이점에서만은 한뜻인양 협상의 여지는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한다. 무엇 때문인가? 나라의 안녕이 좌우될 한국인데도 협상의 여지가 없단 말인가? 당리당략보다 국가를 더 위하는데도 협상의 가능성이 없단 말인가? 협상의 여지가 없는 것이 아니다. 각기 자기와 당의 이익을 국가의 그것보다 앞세우기 위해 대화나 협상의 문을 닫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 이 시간에 분명히 말해두고 싶은것은 국민이 있어 국가가 있고 국가가 있어 정당과 정부가 있다는 것이다. 국민과 국가가 어느 정당 혹은 정권의 도구가 될 수 없고 더구나 그들의 계속적인 정쟁(政爭) 때문에 희생될 수는 없다. 따라서 이같은 난국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공화당이 사는것도 민중당이 사는 것도 아니다. 국민이 사는 것이요 나라가 안녕한 것이다. 공화당이든 민중당이든 국민이 살고 나라가 서있어 비로소 존재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우리는 물론 정치인들일수록 이 단순한 논리를 모를리 없으리라본다. 누구보다도 그들이 이 원리를 잘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혼란과 민족적 비극은 지금까지 실로 이같은 단순하고 당연한 도리가 너무나 자주 무시된데 기인해 있었다해도 과언이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간에 한일협정 시비를 둘러싼 이 사태에 대하여도 우리가 취해야한 정신자세는 다른것이 아니다. 이 도리를 아는 그대로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국가와 민족의 이익을 먼저찾고 당리당략을 희생해서라도 합리적인 대화와 협상의 문을 여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한일협정이 진정 국가와 민족을 위한 것인지 아닌지 보다 더 냉정히 머리를 모아 검토해보는 것이다.
한일협정은 물론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다른 누구도아닌 민족의 숙적인 일본과의 일이라는데서 민족감정이 개재되지않을 수 없고 또 그것이 우리 국민생활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것임을 우리는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한 국가와의 협정인한에 있어서 그것은 어디까지나 먼저 정치외교상의 문제이다. 따라서 그것의 타당성여부 역시 민족감정으로 따지기에 앞서 먼저 외교정치의 전문지식을 토대로 한 연구로써 판가름해야할 것이다. 도대체 그것은 어떠한 마명하에서든지 힘과 힘으로써 겨룰문제가 아닌 것이다.
대화와 협상의 분위기조성을 위해 먼저 힘써야할 사람들은 말할것도없이 정부와 여당이다. 정부와 여당은 한일협정성패에 그 운명을 걸고 그리하여 이를 기어코 또한 조속히 성취시키려는 욕심을 버릴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일협정이 결코 정권연장과 당의 생존을 위해한 것이 아닐터이고 국가와 민족의 먼 장래까지 이르는 복지를 위해서 체결된 것일진데는 정부와 여당은 이같은 대의명분 때문에라도 이 시점에 비준강행만을 고집해서는 안될 것이다. 더우기 그것이 일반국민의 논난의 대상이되었을진덴 정부와 여당은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게끔 정부와 국민간의, 또한 무엇보다 여·야간의 충분한 대화의 길을 여는데 최선을 다해야할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야당에게도 극한저지라는 태도를 지양하고 이같은 대화와 협상에 응하는 선의에 인색하지 말도록 부탁한다.
물론 한일협정조인 자체까지도 무효 선언한 야당으로서는 이것은 체면손상이요 자가 모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또한 그런 비난도 받게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도 역시 앞서야할 것은 한정당의 체면이 아니요 국가의 안녕임을 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야당이 만일 끝내 극한투쟁만을 고집한다면 그것은 결국 여당으로 하여금 비준을 강행치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고 그 결과 이어 야기될 우려가 짙은 민족적 혼란의 공범자됨을 면치 못할 것이다. 야당은 혹시 그런 위기를 바라고 있는지 알 수 없으나 국민은 분명히 그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이 시점에 우리가 바라는 것은 여·야 어느편의 승리도 아니다. 민족의 안녕과 국가의 평안뿐이다.
여당도 야당도 그들이 진정 나라와 국민을 위한 정당이고 또 그렇기를 바란다면 이같은 국민소망을 배신치 않도록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