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전(年前)에 성공회 선교사 한 분이 「茶山賞」을 탔다는 보도를 보고 깜짝 놀란 일이 있다. 왜냐면 그 「茶山賞」이 한국교회 초창기의 일꾼 丁茶山의 위업을 기념하는 상인데 비교회기관, 비신자에 의해 설정된 상이기 때문이었다. 아차 우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일을 했구나 하고 생각이 들며 뒷통수를 아프게 맞은 것 같았다. ▲그런데 5월 28일자 「基督公報」(프로테스탄系)에서도 또 비가톨릭인 스탠드알원슨 목사는 丁茶山의 「교회를 위한 예언적 고찰」이란 논제로 논문을 발표했다. 다산의 인간성 인생관과 업적인 실학(實學)을 바탕으로 한 당시의 정치 · 경제 · 사회제도의 혁신론 등을 연구하고 오늘 교회가 그의 개혁론과 사회에 복사적 정신을 활용하고 본받자고 했다. 우리가 본받고 연구 · 실천했어야 할 일이었다. 우리가 할 일을 못하고 있는 일이 이외로 수다하리라. ▲『한국 가톨릭은 전교의 황금기에 있다』 『가톨릭이 한국문화에 공헌한바는 크다』 『그 교회의 힘은 크고 싶다』 『엄숙하고 권위가 있다』는 찬양을 때로 들었고 우리는 흐뭇해 하고 만족한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전교황금」의 이유가 무엇인지, 「문학적공헌」을 어떻게 했는지, 할 것인지, 무엇이 「엄숙」한지, 왜 힘이 크고 깊은지를 반문할 때 회답에 궁해진다. 그뿐 아니라 국내 신문 · 잡지에 가톨릭인사의 글을 보기가 흔치 않다. ▲국가적 혹은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사목방안이 무엇인지 누가 아는가? 분명히 전세계적 가톨릭은, 「가톨리시즘」은 위대하고 오묘하며 힘이 크고 깊다. 그러나 한국 가톨릭은 아직도 개인적 「가톨리시즘」에서 탈피 못했다. 중추와 바탕이, 거기서 나온 계획과 실천이 없고 산만한 뿐이다. 개인 「플레이」뿐이다. 그 힘이 미약한 것은 불문가지다. ▲병인년 순교 기념도 성당건립이 고작이라면 「순교정신」 앙양의 진수(眞髓)와는 멀다. 공의회가 가르친 각성 · 쇄신 · 현대적응은 한국민을 정신적으로 그리스도안에 일치 · 승복시키는 것이다. 주교 공동교서도 공의회는 형식적 행사가 아니라고 했다 한국 가톨릭은 지적(知的)으로 함양되고 힘을 한데 모아 일치하여 한국을 구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방안들을 조속히 세워 힘차게 실천해야 할 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