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비행과 그 선도의 문제는 본란에서도 수차 논의한 바 있거니와 현금, 조국근대화의 과업이 착착진행되어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하는 것과는 반대로 청소년의 비행은 근자에 와서 그 발생의 빈도며 그 질적인 양상이 점차 시각하여 심히 우려되는 바 있다.
『청소년의 비행이 곧 그 사회혼란기의 척도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조국 근대화에 있어 근본적인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며 그것은 곧 물질적인 충족에만 치중한 나머지 정신면에 망각지대가 개재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때문에 조국을 근대화하려고 하며 누구를 위하여 우리의 조국을 복지국가로 만들겠다고 하느냐? 우리의 다음 세대를 위함이다.
우리의 자녀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자고 하는 우리의 염원은 물질적인 충복에 앞서 다음 세대, 즉 이 나라의 다음 주인공들이 우리의 뜻을 이어 그 복지국가를 계속 발전시키며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그 정신을 먼저 가르쳐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자녀들은 국가의 것도 어떤 사회의 것도 아니다. 자녀들은 곧 부모이 것이다. 자녀들의 교육은 가정에서 하여야 하며 가정교유의 책임자는 부모인 것이다. 학교의 교육은 어디까지나 보조의 역할은 될 수 있어도 주체가 도리 수 없으며 더구나 거리의 경찰돤들이 「청소년의 선도」를 써서 어깨에 메고 돌아다닌다고 해도 그것은 부모들에게 대한 경종과 권유는 될지언정 청소년을 선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청소년들의 선도는 부모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며 그 선도는 올바른 가정교육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가정에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서 청년과 소년은 구별되어야 하겠고 그 비행도 연령별로 구별해서 고찰해야 하겠지마는 대체로 비행을 저지르는 청소년을 보면 부모들이 그 자녀를 방치했을 때와 또 그와는 반대로 너무나 지나친 두둔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고 하고 전자보다 후자의 경우가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가정교육의 결함을 경제적 빈곤에 돌리려고 한다. 가난하기 때문에 부모들이 다 노동에 종사하므로 자녀들을 종일 방치하는 경우가 없지 않지마는 가정의 빈돈이 곧 청소년들의 비행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가난한 집 자녀들은 그릇된 길을 걷게 마련된 것이 아님은 두말할 것도 없다.
빈곤한 가정일지라도 사랑이 있는 가정의 교육이 있으면 자녀들은 결코 탈선하지 않는 것이다. 자녀들이 탈선하여 비행을 감행하는데는 빈곤만이 아니고 부부간 쌍방이 혹은 그 한편이 사람답지 않는 생활을 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보통이다.
한편 좋은 가정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가정출신 자녀들의 비행이 의외로 많다고 했다. 소위 과잉교육에서 오는 결과다. 학습은 가정교수의 힘으로, 생활은 특히 어머니의 간섭 아래 영위하는 습성 아래 자라난 아동들은 독자적인 판단력과 자제력(自制力)과 인내력을 상실하여 혼자는 살 수 없는 심신양면으로 연약한 자녀를 만들어놓고 부모들은 자녀교육에 전심전력을 다했다고 자부하고 있는 수가 많다.
이런 가정의 자녀들이 일반 부모의 슬하 밖에 나갔을 때 비행에 휩쓸리기 가장 쉬운 상태가 되는 것이다. 올바른 가정 교육을 위하여 부모들의 심심한 반성과 진지한 검토가 있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