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社說(사설)] 殉敎精神(순교정신) 生活化(생활화)하자
先烈(선열)들의 諡聖(시성) 列福(열복) 運動(운동) 全國的(전국적)으로 展開(전개)하자, 金大建(김대건) 神父(신부) 祝日(축일)에 즈음하여
이달 5일은 복자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를 기념한다. 그가 시복된 날을 택한 것이다. 여기서 김 신부의 파란 중첩의 일생을 기록할 지면이 없다. 다만 그가 15세의 소년으로 원대한 포부를 품고 조국과 교회에 헌신코저 철의 장막같은 쇄국주의의 국경을 넘어 「마카오」에 유학했다는 사실과 황해의 거친 바다를 일엽편주로 내왕하여 혹 만주 벌판을 횡단하여 철석같은 鎖國令下의 국경을 수차 뚫고 내왕하며 극도의 위험과 만반 장애가운데 용감히 주의 복음을 전파한 그의 초인간적 활동에 우리는 머리를 아니 숙일 수 없음을 독자에게 상기시키는 바이다.
26세를 일기로 「새남터」 백사장에서 거룩한 피를 흘려 장렬한 순교를 한 그의 다난한 일생이야말로 신앙과 조국애 동포애를 위한 분투로 일관한 대표적 가톨릭순교자의 거울이다. 조국의 근대화를 부르짖는 이때 만일 그 당시의 이 나라 위정자들이 해외견문을 넓히고 온 그를 용납했던들 조국의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요 조국 근대화가 百年代를 앞당겨 이루어졌을지 모를 일이다. 또 그가 아니였던들 이나라 가톨릭역사의 절반은 생겨나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과 같은 발전은 못보았을 것이다. 이러한 위인을 가진 우리는 그만큼 이 축일을 뜻있게 보내야 할 것이다. 특히 금년은 병인년 순교 백주년을 맞이하여 각 처에서 그들의 순교정신 앙양사업을 전개중에 있다.
우리는 김신부나 병인년 순교자들의 순교정신을 본받자고 외치는 바이다. 그들은 천주를 위해 잔인무상한 악형중에 붉은피를 쏟아바침으로써 우리에게 영생의 길을 개척해 주었다. 만일 그들이 무력하게 배교하였거나 희생적 활동을 아니하였더라면 이땅에 진리가 이보다 더 늦게 도입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점 하나만 보아도 그들을 현양할 의의가 있는 것이다. 순교는 하나의 옛 사건이요 오늘날 새슴스러이 그것을 추억으로 되살린다는 것이 무슨 이익이 있느냐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사고방식은 순교정신의 소극적인 면만을 보는 정신이다.
현대에 있어 순교정신을 고취하는 적극적인 의의가 달리 있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칼로 목을 자르는 박해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순교정신이 필요치 않다는 생각은 너무나 피상적이다. 20년이 넘도록 38선은 여전히 가로 놓여있고 피비린내 나는 6·25 열여섯 돌을 며칠전에 맞이했다. 오늘 모든 공산정권에서 북한의 교회탄압이 제일 심하다는 소식통이다. 또 우리 주변에 조국애를 좀먹는 사도 요왕의 소위 『육체와 안목의 쾌락생활에 대한 자랑』이 영혼의 빛을 덮어 희생에로 나아가는 정신을 결핍케 하고 있다.
이러한 도덕을 거부하는 육체적 현세 향락주의와 유물주의에 대항하여 우리는 인간성 옹호와 도덕 수호에 용감히 투쟁할 행동의 시기에 봉착한 것이다. 여기서 절실히 순교정신 고취의 필요성을 느끼는 바이다. 즉 이러한 주의 사상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곧 순교정신의 적극적인 표현인 것이다. 그러므로 김신부의 축일을 맞이하여 순교정신을 뼈에 사무치게 느끼고 그 의의를 재인식하는 동시 이 정신에서 따라오는 용감한 행동을 강력히 전개시킬 것을 맹세하자. 끝으로 이기회에 한가지 말해두고저 한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주교단에서 병인년 순교자 26명의 시복을 「로마」에 청원했다고 한다.
이러한 운동은 주교들만의 일이 아니라 거족적으로 전개시켜야 한다. 신자들은 여기 대하여 전연 아는 바 없다.
시복을 위한 전국적인 청원기도운동 같은 것을 전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들을 현양하는 것은 우리의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