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때 먼척벌 어른 중에 무명우국지사 한분이 있었다. 항일사건에 가담하여 옥고를 겪은 일도 있다는데 확실한 내막은 모른다. 가끔 어른들의 심부름으로 그집 사랑에 드나든 일이있어 거기에서 몇분의 유명 무명의 지사를 뵌 중에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은 이가 33인중 한분이며 당시 서울 성북동 심우장(尋牛裝)에 계시던 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 선생이다. ▲그의 은회색 모시두루막은 잠자리 나래같이 화사한데 삭발에다(그는 대처승이었다) 마치 두눈이 때로 비수같이 냉엄한 빛을 발하는것 같았다. 거기다 그는 체머리를 몹시 떨었는데 그건 왜적에게 고문은 당한 탓이라 했다. 만해 선생은 그 민족설욕의 비원을 품은채 아마 광복절도 못본채 저승의 객이된것 같다. ▲해마다 광복절이오면 그 어른의 원혼에찬 고뇌의 눈길을 상기치 않을 수 없다. 수다한 선열이 조국광복을 위해 피흘리고 박해받았으나 우리민족 해방은 실상 타력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적 양심의 발로인 이러한 선열들의 완전한 자기헌신이 없이는 우리의 조국 광복사는 얼마나 무의미하며 빛을 잃게 되겠는가. 또한 이는 불멸하는 민족얼의 상징이며 메마른 민족양심을 고취하는 원천이기도 하다. ▲20년전 조국광복, 그날 온겨레의 한결같던 감격과 그 순수한 조국애, 민족장래의 포부를 상기했을때 현시점에서의 우리의 내적 외적상황이 과연 어떠한가를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국제정치권력 추세에 밀려 국토가 양단되고 드디어 동족상잔의 비극까지 겪는 약소민족으로서의 시련은 실로가열(苛烈)한 것이었다. ▲허지만 실상 외세보다 더욱 통분한 일은 우리 스스로 안에서 부식한 이미 만성화된 망국적 고질이다. 어느 권부에서도 예외없던 부패 분열 파쟁 무능 이런 부진과 악순환의 해방 20년은 고스란히 허송세월을 했다해서 과언일까? 이민족(異民族) 박해에 대항하여 우리겨레는 어느 민족 못지않게 자유를 위해 부단히 항쟁하고 결속했다. 허나 어떤 정치적 결속도 인간 내면의 적을 분쇄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는 지상의 이스라엘 국을 해방시키지 않고 모든 백성의 영혼을 해방시키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