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타는 날이다. 학교선생은 1만5천원을 타고 노동자가 3천원이나 5천원을 타며 의사는 2만5천원이나 5만원을 타는데 식모는 1천5백원을 받는다. 사장은 10만원을 타고 수녀는 3천원 본당회장은 6천원서 3천원, 기술자가 2만원이며 사무원은 4천원서 1만5천원이다. 1천5백원에서 10만원 월급의 차이는 너무 크지 않는가? 그런데 일반사회는 그렇다.
자본주의의 사상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각자가 자기 주머니만을 생각하면 된다고 하는 사상이다. 남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사상이다. 10만원 타는 사람은 적당히 살 수 있겠지만 식구들이 많고 3천원밖에 받고있지 않는 아버지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루에 12시간 동안 노동하고 쉬지 못하며 건강만이 나빠지는 노동자는 3천원이나 4천원밖에 받을 권리가 없는가? 10만원 월급을 탈 권리는 있을 수 있는가? 여기에는 많은 해결돼야 할 문제들이 내포되어 있다.
일반 사회는 그렇지만 우리 교회 내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복음에는 일군이 적당한 갚을 받을만 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또한 교회가 가르치는 것은 자본주의도 아니고 공산주의에 속하는 것도 아니다.
정의에 속하는 가르침이다. 특히 교종 요안 23세께서 사회적인 정의에 관한 문제를 대단히 중요하게 봤다. 교종이 된 다음에 며칠 후에 그는 「바티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사무원들을 직접 만나서 월급으로 얼마만큼 받고 있느냐고 물어 봤는데 높은 사람은 적당히 받고 낮은 사람이 너무 부족한 월급을 받고 있다는 대답이었다. 한달 안으로 볼급은 30% 올랐다. 바오로 6세 교종도 취임후 두차례나 봉급인상을 했다. 더우기 역대 교종이 경제적으로 균등하고 정당한 분배를 역설했다. 낮은 자나 높은 자나 누구든지 적당한 월급을 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교회는 일군을 적당하게, 편리하게만 이용할 자격이 있는게 아니다. 「열심」만을 바랄 수 없다. 이뿐 아니라 정의에 맞갖고 어떤 사람이라도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교회의 큰 사명이다. 본당과 교구평의회는 그리고 전신자는 본당과 교구가 정단한 보수를 지불할 수 있게 해야한다. 보수 문제에 있어서도 교회는 일반 사회의 소금과 빛이라야 한다. 교회는 자본주의를 따르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정의의 사상을 따라야 한다.
교회라면 교회의 사업들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엌에서 일하는 아이에게 5백원밖에 월급을 주지 않는 가톨릭 신자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비교함으로써 얼마만큼 정의를 따르는지를 발견하며 실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신자들은 서로 모여 각자가 자기의 경제적인 사정을 형제애에 입각해서 대화하고 정의를 실천하는데 협력할 필요가 있다. 신자들은 정의를 찾아야 하는데 설직자들도 정의를 찾아야 한다. 공의회는 본당의 경제적인 사정을 모든 신자들에게 알려주는 것은 참으로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교구의 경제적인 사정도 비밀을 지켜야 할 필요는 없다. 천주의 백성인 우리가 즉 주교와 성직자들 또한 모든 신자들은 다 함께 한몸과 같이 살아 나가야 하는 천주님의 부르심과 사명을 지니고 있다. 기도함에 있어서도 그렇고, 정신적으로 그렇고 또한 경제적인 사정에 있어서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