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정말 너무한걸!』 이러게 어디라 없이 원망조차 쏟아놓고 싶은 유난스러운 이 지방 폭서다. 최중심가를 면한 동쪽 전면 유리창으로부턴 끝없는 거리의 소음과 아스팔트의 열기가 쏟아져 들어온다. 게다가 이즈음은 사옥(社屋) 증축공사로 전건물이 뒤흔들리고 공간이 무너지는듯한 벽돌깨는 망치소리 -. ▲뽀얗게 먼지 앉은 책상 위, 이 가운데서 원고지를 시간내에 처리해야만 되는 중압감에까지 몰려 이건 정말 생지옥같구나 내심으로 투덜거리지 않을 수 없다. 이래서 불쾌지수는 극한지수로 치달아 이쯤 되면 감정적으로 정상상태를 유지하기 어렵다. 그래서 짜증 불평투성이. ▲허자만 똑같은 객관적 조건하에서 사람은 저마다 그 반응도에 차가 있고 그 표현이 다른 것 같다. 확실히 인간이 내적 외적 역경을 통해 그 인간성과 인격의 척도가 드러나게 마련이다. 또한 같은 시련이지만 영혼의 질과 깊이에 따라 감점(減点)이 되는가 하면 이점이 되는 수도 있다. 허지만 시련과 고난 자체는 소극적이며 부정적인 악에 속한다. ▲일전 한 불란서 청년이 칼리포니아 주경에 있는 평균 70도인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죽음의 계곡」을 횡단한 장거(壯擧)가 보도되었다. 비단 이런 자연에 대한 정복뿐 아니라 인간은 모든 불가사의한 고난과 역경에 대해 스스로 원햇거나 주어졌거나 그자신 악전고투하고 극복함으로써 그의 위대성을 점차 시현하게 된다. ▲스타인백의 「노벨」 수상작품 「분노는 포도처럼」도 자연의 재해와 기계문명의 피해와 가난에 몰려 8천리라는 머나먼 여정을 이 「죽음의 계곡」을 넘어 칼리포니아로 이주하는 30년대 미국 농민들의 생태를 묘파한 일대 서사시적 현대판 「출애급기」라 한다. ▲그렇다면 이 죽음과 가난과 천대, 작은 고초를 감행하면서 『끝까지 살아가는』이 위대한 서민의 생이 의지와 그 원동력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의 『가난을 분개하고 부유한 자를 저주하는』 바람이 아니라 오히려 이드에 대한 깊은 사랑과 생에 대한 강인한 본능적인 긍정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연원으로한 「휴머니즘」이 아니더라도 세상엔 인생 그 자체를 긍정하며 『사랑의 투쟁』을 벌려온 무수한 「휴머니스트」가 있는 반면 모든 것을 『정말 너무 하다』면서 허잘것 없는 자기 욕구 불만과 악조건에 부지럽시 허물어지는 인생도 얼마든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