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수령의 발동과 더불어 거리에 불꽃튀던 「데모」의 열풍은 잠시나마 가라앉은 것 같다. 그러나 만신창이의 정국은 여전히 방향감각을 잃은채 어둠속을 방황하고 있다.
이 시간에 국민인 우리의 소망은 단한가지, 그것은 마치 서로 생사(生死)라고 판가름할 것처럼 적의(敵意)에 찬 눈으로 맞서있는 여·야의 극한 대립, 정부와 학생간의 대립상을 어떻게하면 피를 보는것 같은 더큰 불행의 유발원이 막다른 골목에서 구해지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국민인 우리는 정부와 여·야정치인 군·경과 학생 모두가 이성과 냉정을 다시 찾기를 기원하고 모두가 조국애라는 더 근본적이요 더 높은 차원에서 문제해결의 길을 찾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거듭 말해보았자 소용이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왜 우리 민족사회는 이같이 끊임없이 정치적 혼란을 되풀이해야 하고 왜 이같이 파쟁과 정쟁만을 계속해야하는 것인가? 실로 비통한 일이다. 이조(李朝)말의 사색당파를 비롯하여 분열이 나라를 결단낸다는 것을 어느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체험한 우리들이 아닌가? 국토가 분단되고 휴전선을 경계로 지금 이 시간에 총을 겨누고 맞서 있는 것도 실은 동족끼리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아는 우리들이 아닌가?
그러면서 이편인 우리끼도 헐고 뜯고 치고 박고 매도해야만 할 이유는 무엇인가?
한일협정이 그 이유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오늘날의 이 혼란과 상호적대감정은 그것을 둘러싸고 찬·반을 표명하는 그 방법이 당초부터 너무나 극한적인데서 이다. 형성체결 강행과 한사저지, 유효선언과 무효선언 『매국적이다』 『이적행위(利敵行爲)다』, 이런 식으로 극과 극의 평행선만을 긋고 상대방의 타도만을 부르짖은 데서 오늘과 같은 정국파탄은 야기된 것이다.
그러나 때리는 사람은 누구이고 맞는 사람은 누구인가? 살과 피를 같이하고 오늘의 삶과 내일의 운명을 함께하는 동족이요, 동기들이 아닌가? 피를 흘려도 그것은 형제의 피를 흘리는 것이요 타도한데도 그것은 결국 동족을 타도하는 외에 다른 무엇도 아닌 것이다.
이 시간에 우리 민족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분열이 아니요 단결이며 서로를 비난·공박·매도하는 것이 아니요, 서로를 아끼고 이해하고 존경하는 것이다. 주먹다짐이 아니요 악수를, 미움이 아니요 사랑을 우리는 필요로 하고 있다. 더구나 투석과 경찰봉 및 총검의 대립이 우리를 구하는 길이 아니요 망치는 것임을 더 말할 필요조차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태수습은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인가?
강경책으로 「데모」를 진압하고 반대파를 모조리 불법으로 몰아 체포구금하는 것인가? 혹은 한일 협정비준의 무효화투쟁을 더 극한적으로 지속하는 것인가?
우리는 그 어느것도 오늘의 정국을 파탄에서 구하는 길이라고 볼수가 없다.
그와같은 정부의 강경책과 그 반대의 야당 투쟁방법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뿐이지 해결에 이바지 한다고 볼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결국 상대방의 제거와 숙청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코 학생 「데모」내지 야당의 한일협정 비준 반대의 극한적인 방법을 환영하는바 아니다.
우리역시 「데모」가 무한정으로 계속되고 더우기 헌정질서를 위협하는 데까지 나가서는 안된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오늘날 나라를 결단내는 근본원인이라고 보는 정부 견해에 동조할 수는 없다. 오히려 우리는 작금의 학생 「데모」도 그 근본은 애국심의 발로이고 박대통령 친히 금년 5월 방미시(訪美詩)에 표명한대로 『정당한 국민적 의사의 반영』이라고 아직은 보고 싶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날 우리의 정치사회를 혼란의 도가니속에 빠드리고 국난의 위기에까지 몰아넣은 근본원인은 학생 「데모」에 있다기보다 앞서 정치의 부정부패, 나아가 끊임없는 여·야정쟁에 있다고 보는 바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시간에 정부나 여당은 학생 「데모」가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판단하기에 앞서 자신들이 진정 국리민복만을 위해 일하였는지 먼저 반성해 보기를 촉구하여 마지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일부 야당의 주장과 같이 현정부를 「매국적」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타도해야만 이 나라가 구제될 것이라고 볼수도 없다.
비록 현정부에 대한 우리의 불만이 적지않다할지라도 정권교체는 절대로 헌정질서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 기회에 다시한번 야당에게 분명히 밝혀주고 싶은 것은 야당도 여당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국민의 불신과 치매를 사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오늘과 같은 불행한 사태의 책임은 정부나 여당만이 아니고 야당도 함께 지고 있다는 것을 야당정치인들이 몰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 야를 막론하고 이시점에서 무엇보다도 당부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잘하는데 저들이 있어서 안된다』든지 『저자들을 제거치않는한 나라일이 돼나갈 수 없다』든지 하는 독선적인 관념과 태도를 지양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사회는 광복후 오늘날까지 실로 이같은 자칭 애국자들의 범람에 의해 멍들고 병들었기 때문이다.
현정국의 수습과 해결의 길은 이같이 독선적인 태도와 관념을 지양하고 관용과 이해를 가지는 데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서로가 아집을 버리고 마음문을 여는데서 암흑에 파묻힌 정국타개의 서광이 보일 것이다.
흉금을 열고 허심탄회하게 서로 이야기하게되면 서로가 결코 원수가 아니고 벗임을, 남이 아니고 형제임을 알게 될 것이요 민족의 오늘의 복지와 내일의 번영을 위해 서로가 서로를 제거해야할 것이 아니고 더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여·야정치인들이 이같이 형제로서 다시 한자리에 모여 나라걱정을 함께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원해마지 않는다.
한마디로 함정에 빠진 정국의 돌파구는 따로있지 않다. 꽉막힌 각자의 마음문을 여는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