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忍耐를 기르는 軍隊生活 / 朴文植(제◯◯부대)
육군졸병 생활을 통해 경험한 바이지만 천주를 알고 있는 우리교우 군인들은 상관의 명령에 불평불만을 억제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하고 임무에 충실한다면 제아무리 군대가 투수사회지만 통하는 길이 있다는 것이다.
천주를 위해 고통을 참을 줄 아는 자라면 무엇을 감당할 수 없겠는가? 군대에서 배운것이 무엇이냐고 이 졸병에게 묻는다면 첫째로 적과 대항하며 싸우는 방법일테지만 나는 무엇보다 인내심과 무조건 명령에 복종한다는 그야말로 인간조건의 한계상황을 초월하는 정신과 단체생활을 영위하는 길일것 같다.
그리고 「빳다」(몽둥이)를 맞을 수 있는 「참을성」, 군대생활이란 좋지 못한 분위기 속에서 신앙을 저버리는 타락한 생활을 하는 교우 사병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생활을 하는 사병자신은 물론 후방에 있는 모든 신자에게 그들을 위해 열심히 기구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 또한 따뜻한 위문편지와 영혼의 양식이 될 신심서적 교회출판물 위문문 위문품을 보내어 그들의 신앙생활에 적극 협력해줄 것을 거듭 부탁한다.
■ 高聲放歌 / 權에우프레시아(어떤 시골본당)
영세한지 1년여 밖에 안되는 한 시골본당의 교우입니다. 거의 십리가 되는 본당을 매주일 나들고 있는데 그날도 여느때와 같이 레지오 주회를 마치고 밤늦게 한적한 시골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읍니다.
때마침 본당 구역책임자집 담모퉁이를 돌려는 순간 내귀를 의심치 않을 수 없었읍니다. 이미 자정이 넘었는데 이웃도 아랑곳없이 젓가락으로 상을 두드리며 저속한 유행가를 그야말로 고성방가(高聲放歌)하는데는 아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이런 모양은 참아 교우가 아니더라도 보통 여염집에도 삼가 할, 길가의 왕대포집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일 것입니다. 적어도 세속에 표양이 될 교우집이라면 우리는 이런 일뿐아니라 언제나 일상생활의 언어행동에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흔히 주부들이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함부로 욕지거리를 하는 것도 자녀교육에는 물론이요 교우 가정으로서 외인들에게 나쁜 표방이 될가 두렵습니다.
■ 信仰의 表樣 / 金에밀리오(광주시 북동 高校生)
『가톨릭은 전교에 있어 소극적』이란 말을 자주 듣는다. 학원에서의 학생활동은 더욱 그런 감이 든다. 많아야 한 학급에 2, 3명이 고작인 우리학교의 현실로는 무엇보다도 어떤 세속적인 체면으로 눈치를 살피며 신앙생활을 소극적으로, 안으로만 파묻어 두어서는 안될 것 같다.
작년봄 낯선 얼굴들을 마주보며 새학년이 되어 첫수업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같은 자리에 앉아 있던 M이라는 친구가 정오가 되자 성호를 으젓이 긋고 두손을 모아 삼종을 바치는 것이 아닌가.
주위의 시선이 그리로 쏟아졌음은 물로 좀 정신이 돌았느니 바보 같다느니 하면서 며칠간 화제거리가 되었지만 날이가고 달이가면서 여러면으로 M의 인품을 존경하게된 나머지 차츰 그 둘레의 학우들 간에는 그가 가진 신앙에 대해서 흥미를 가지고 그에게 문의하며 접근하게되는것 같았다.
외인들 앞에서도 서슴없이 신심행위를 할 수 있는 그의 신념에찬 경건한 태도, 또한 이것은 그의 여러가지 일상생활이 신앙과 부합함으로써 드디어는 남의 눈에도 거의 어색함이 없는 진지한 자세로 비친다면 이것은 교우이면 누구나 갖기를 힘써야할 덕행이 아닐까?
■ 紛心거리… / 成우석(경북 성주군 성주면 백전동 413)
『미사시간에 분심이 생겨 성체를 모실 수 있어야지』 이런 말을 흔히 듣게 된다. 한주일 동안 복잡한 세상사에 시달리다가 피곤해진 심신으로 주일이되어 제대앞에 나아가 모든 잡념을 씻어버리고 모처럼 경건한 자세로 미사에 참여하는데 문득 밖에 두고온 신발이 없어질라하는 근심에 싸여 결국영성체를 할 수 없게까지 된다면 이런 낭패가 또 어디 있을까?
교회에서 흔히 생기는 그런 불상사는 물론 교우들 사이에서 일어난다고는 상상할 수도 없고 이런 불량자가 교인의 가면을 쓰고 계획적으로 하는 짓이겠지만 이런 일은 외부에서 보더라도 교회를 크게 손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마리 고기가 전시냇물을 흐리게하는 이런 폐단을 없애기 위해 교우 각자의 조심은 물론이요 교회당국에서도 모처럼 분심없이 미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적절한 사전조치가 필요할 줄 안다.
■僻村에도 出版物을 / 朴아오스딩(제1육군병원)
고향에 있는 동생처럼 사랑하는 한 소녀로부터 「세레나」라는 본명으로 영세 받았다는 반가운 소식을 받았다.
영세를 받기 위해 50여리를 이틀 동안이나 「버스」로 왕복하면서 일년 동안이나 빠듯이 예비했다니 보통 신속·편의주의로 넘어가는 일부 도시의 날치기예비(?)와는 얼마나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녀가 예비중에 가끔 전해온 이야기인데 벽촌에서는 거의 문화의 혜택도 받지 못하고, 가뜩이나 성당과 공소마저 먼데다가 교우들은 가물에 콩나듯 만나기가 힘들고 게다가 교회출판물이라곤 볼수 없으니 무엇으로 영신생활을 지탱할 것이냐는 것이다.
조금만 성의만 있으면 출판물은 물론 신심생활에 지도가 될수 있는 서적이 얼마든지 있는 도시에서도 냉담자는 속출하고 있는데 하물며 모든 문화와 신심생활을 위한 환경과 조건에서 격리되어 있는 벽촌은 어떠하랴.
우리는 단 한사람의 영혼도 낙오시키지 않기 위해 벽촌에다가도 교회출판물을 보급하는 운동을 벌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