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변천하는 것이지만 인간사회의 약속의 일종이라 한다면 자연적인 변화와 인위적인 변화에는 신중히 생각할 일이라 믿는다. 거칠어가는 현대의 언어사회에서 인위적인 조언(造言)과 변화는 가능하다 하더라도 일반화 및 관습화된 언어의 고의적 변경엔 유의해야 될 것 같다. 물론 신교와의 일치를 도모하는 의도가 있다 하더라도….
『기도합시다』 - 신교에서 목사나 장로가 회중들에게 『자, 기도합시다』의 맛이 역력하다. 『빌지어다』의 장중한 맛은 찾을 수가 없다. 특히 삼종경의 축문에서 『기도합시다』는 더욱 어색해진다. 혼자서 기구할 때는 더욱 그렇다.
또한 미사통상문중에는 일관성 있는 어조가 필요하지 않을까? 경건하고 엄숙할 미사전례에서는.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계셔지이다)
천주께 감사(하나이다)
주께 영광(이 계셔지이다)
그리스도께 찬미(가 있어지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으로 …아멘(하나이다)
영광이 성부와 …항상 영원히. 아멘(있어지이다)
이상에서 괄호안의 말들을 줄인 것 밖에는 변동이 없는데 「스피드」시대라고 줄인 것이 공의회 정신에 부합한 건지, 아니면 외국 신부이신 본당시누님의 말씀대로 한국말이 아닌 「라띤」어를 그대로 번역한 건지?
더우기 『기리나이다, 찬미하나이다, 받드나이다, 감사하나이다, 기다리나이다, 삼가아뢰오니, 나으리이다…』 등에서 거이 최경어법의 어조에도 군데군데 나오는 약식어(略式語)(?)는 아무래도 어색하다.
물론 지금까지의 한문식 고어식인 용어들을 대폭 현대화시킨 선생님들, 신부님들의 노고와 성과를 촌분이라고 감하려는게 아니다. 다만 이러한 중대한 용어쯤은 본당신부님(일선에서 직접 사목활동하시는)들의 의견을 들었는지 묻고 싶다. 또한 「가톨릭시보」에 게재되는 매주일 고유미사경의 시안을 보면 상기 어색한 감이 많이 발견된다. 꼭 현대 국어체화한다 해서 교우들에게 친근미를 준다고는 말할 수 없다. 적어도 종도들과 성사(聖史)가들이 가르쳐주고 훈계했던 복음들은 지금가지의 귀에 익은 장중한 어조가 격에 맞지 않을까? 천박한 느낌을 갖는 것은 자신의 전근대적인 보수성에만 기인할까?
許必秀(전북 임실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