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도 숲도 없는 삭막하고 고루한 이런 도시에서는 가을은 투명한 대기 속에서 차라리 눈으로 보다 피부로 느낀다. 해질녘 잿빛 포도 위에서 쓸쓸한 바람이 불면 차라리 육신보다 마음이 더 시리다. 자연의 정취가 지극히 희박한 메마른 이 고장이지만 시인이나 문사 예술가들이 많다. 그들이 잘 모이는 H다방. S시인 T시인 G시인 제나름에 취하는 그런 호사가들이 아니라 학식이나 예술적 기량이나 명성이 겸비한 고매한 인사들도 여럿 있다. ▲항상 과묵한 편이고 주는 분위기가 퍽 순수하게 더 시인적인 어떤 여류도 역시 말없이 앉았다. 『아, 여기 가을이 와 앉아있네』 T시인이 문득 그녀를 보고 하는 말. 거기에 말없이 참말 가을빛처럼 쓸쓸히 웃는 그녀는 아닌게 아니라 여느때보다 한결 초췌해진 느낌이다. 『그렇지, 이즘은 그 「릴케」적인 우수를 누구나 느낄때지』 S시인의 말.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이다. 바람에 불려 나무잎이 날릴때 불안스러이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매리.』 릴케의 이런 고독과 낭만이 아닐지라도 가을은 시긴의 계절이며 인간이 더욱 내면으로 깊어가는 사색의 절기다. ▲그런데 그전에 한 예술가로부터 자기는 아직 종교를 생각한 적이 별로 없었노란 말을 들었다. 예술 역시 人間學에 근저를 둔 耽美의 과정일진데 어찌 인간 근원적인 문제에 그토록 외면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다. 이점에선 크리스챤 지성인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철인의 말처럼 『완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존재하지 않는 한』 모든 인간은 어떤 의미로 절망과 불안을 갖고 있다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과연 완전한 신앙에 뿌리깊게 안주하고 기존 계율에 충실함으로써 이 혼란한 세대, 현실추구만에 눈이 어두운 인간상에 아무런 문제의식도 갖지 않은 채 安易하게 자기들만의 知的利己를 누리고 있는 참일까? ▲순교자란 말의 피상적인 인식은 이네 삼척동자도 알만큼 지겹도록 들었다. 인간의 가장 깊고 고매한 정신의 발로인 이 순교에 대한 진정한 인식은 누구보다도 인간의 탐미를 추구하는 意識人들, 예술인들에게 가장 절실하며 탐구의 대상이 될만하다. 순교자 현양을 위해 가톨릭 문화인들의 그들 나름의 문화적인 선양이 모색되고 있다는 말을 못들었다. 백년전 찬란한 순교의 피를 뿌린 이 땅에 사색의 결실이 없어 삭박한 순교선양의 가을을 맞이하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