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죄악과 싸움이란 불행한 자국에 얼룩진 따위에서 엮어져 왔다. 그러나 그 바탕만은 선하고 평화로운 것이었다. 만약에 그 바탕마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세계가 전쟁에 휩싸이고 또는 인류가 죄악 속에 타락한다고 가상한다면 그때에는 이미 이 땅위에 인류의 생존이 불가능할뿐 아니라 인생이 곧 불행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신앙의 본질은 사랑이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곧 우리의 신앙이다. 평화는 사랑의 열매이다. 하느님을 사랑하면 영원한 평화를 얻을 것이요 사람을 사랑하면 이 땅위에 평화가 온다. 그런데 실은 이 두가지 사랑이 서로 갈라놓을 수 없는 하나이기 때문에 누구도 그 하나를 택하고 다른 하나를 버릴 수는 없다.
그러므로 결국 우리의 신앙과 세계의 평화는 서로 나누어 생각할 수 없는 관련을 맺고 있다.
역대의 교종께서 전 세계에 선(善)과 정의를 가르치고, 전쟁을 중재하고, 평화를 호소한 일들이 많았다. 이런 일은 곧 스스로의 신앙적 본분에 속한 것이었다. 더구나 오늘과 같이 전쟁의 규모가 커지고 병기가 발달하고 그 피해가 세계를 휩쓸 단계에 이르러서는 모든 신앙인에게도 새로운 각성이 요망된다. 그래서 지난 9월 19일에 현 교종 바오로 6세께서는 전 세계에 회칙을 내려 특히 이달을 월남전쟁 종식을 위한 기도의 달로 정하고 평화회복을 눈물지어 호소하셨다. 그 전란종식을 위하여 직접 그 중재(仲裁)에 나설 용의를 표명하셨고, 세계의 평화계획을 위한 새로운 회의를 가져야 한다고 하셨다. 또한 그는 전세계의 정치지도자들에게 인류이 정의와 자유에 바탕한 개인과 사회의 권익을 보장할 수 있는 세계평화와 군비축소를 위해 가진 힘을 다하라고 호소하셨다.
전쟁은 불행한 사건이다. 더구나 핵무기가 발달한 오늘의 국제불화는 전쟁당사국간의 불행일뿐 아니라 전 세계를 위협하는 중대한 인류 전체의 문제이다. 그 위협이 계속되는 한 모든 나라는 평화를 등진채 경쟁적인 전쟁 준비 속에서 불안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나 그 불안은 결코 전쟁만으로써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전쟁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행히도 기왕에 일어난 전쟁을 하루속히 평화의 질서로써 종식시켜야 하는 동시에 또한 전쟁을 유발시킨 여러원인들을 미리 제거하고 예방하는데 노력하는 현명함을 가져야 할 것이다. 가난한 나라를 도우고 재난을 당한 고장을 도우고 불우한 인간을 도울 줄 아는 사랑을 가져야 한다. 이런 일에 있어서도 특히 신앙인은 그 선두에 서야 할 것이다. 이번 제2차 「바티깐」 공의회 벽두에 있어서도 쉬넨스 추기경은 교회를 대내적(對內的) 교회와 대회적 교회로 나누어 그 의제를 토의하자는 제창을 하였고 이번 공의회가 교회의 대사회적 사명을 중시하여 특히 「현대세계에 있어서의 교회사목헌장」을 공포하기에 이른 것이다. 실로 교회는 스스로의 쇄신, 즉 모든 신자들의 신앙생활 지도에 노력하는 것과 한가지로 교회밖에 있는 세계를 지도하는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물론 그 지도영역과 방법이 정치인과는 같지 아니하나 그 중요성에 있어서는 정치인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동안 교회는 공산치하 침묵의 교회와 그 나라 백성들을 위하여 꾸준한 기도를 바쳐왔고 빈민구제를 위한 세계적 활동도 아끼지 아니했다. 이젠 공산국가중에서도 성청(聖廳)에 귀를 기울이는 경향이 현저하게 나타나게 되었고 세계의 많은 난민들이 구제품으로 굶주림과 질병을 이겨왔다. 그러나 요즘 시국은 그 해결책이 묘연한 월남전쟁을 둘러싸고 새로운 위협이 전 세계를 불안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만약 이 전쟁이 확대된다면 우리의 경험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큰 불행이 올 것이다. 그러므로 교종께서는 세계 모든 신자들의 뜨거운 기도를 호소하는 회칙을 내린 것이다. 더구나 우리는 우리의 장병을 월남에 보내어 싸우고 있는 나라이다. 그럴수록 우리나라 신자들은 더욱 열심한 기도를 바쳐 평화를 구해야 할 것이다.
UN이 전쟁을 단죄(斷罪)한지 20여년이 되었다. 그런데 아직도 전쟁을 없애지는 못하고 있다. 그 이유를 UN의 기구상의 결함에서 찾으려는 어리석은 학자나 정치가도 있다. 제1차 세계대전후의 국제연맹보다는 확실히 오늘의 국제연합이 비교적 좋은 기구를 갖추었다. 그러나 전쟁은 기구(機構)의 힘만으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따위에 선과 정의를 결한 무리가 있는한 어떠한 국제 기구도 전쟁의 방지를 약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준법(峻法)만으로는 범죄를 없앨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원래 적어도 공동의 목적의식이 없는 대립은 해결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영원한 평화는 영원한 공동이 목적의식 밑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 목적이야말로 처음부터 하느님이 인류의 질서로서 정해주신 선과 정의의 질서요 모든 인류가 그리스도께로 귀일하는 신앙의 질서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우선 모든 신앙인은 마음을 모아 그리스도께 지상의 평화와 그 구원을 빌어야 할 것이다. 이달은 특히 세계까 당면한 월남전쟁의 종식과 평화로운 질서회복을 위하여 전 세계의 모든 신자가 공식으로나 사사로이 정성어린 기도를 바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