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 가장 흡사한 생활과 정신에 살은 평화의 성자(聖者) 「아씨지」의 성 프란치스꼬 축일인 10월 4일, 또 한분의 그리스도의 평화사도(平和使徒)는 「뉴욕」에 있는 국제연합석상에서 전 인류를 향하여 형제적 사랑과 인간 상호이해를 토대로 한 평화를 호소했다. 그는 또한 그리스도의 지상대리자로서 인류가 갈구하는 평화와 구원을 천주성부께 간구하는데 있어 어느 기도와 어느 호소보다도 더 값지고 효과적인 미사성제를 이 목적달성을 위해 10수만 신도들, 아니 전인류와 함께 봉헌했다.
우리는 교황 바오로 6세의 금번의 「유엔」 방문을 하나의 「센세이션」한 「뉴스」 재료로만 볼 것이 아니다. 물론 지난 반(半)세기이상 「바티깐의 수인(囚人)」이라고도 불리운 「로마」 교황이 교회역사상 가장 먼 장거리 여행을 이번으로써 세번째 하게 되었다는데 의미가 없는바 아니다. 그러나 우리역시 세속의 보도기관들과 같이 그것을 진기(珍奇)한 「뉴스」의 하나로만 보고 오늘은 그것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갖고 지면(紙面)을 할애하나 내일은 다시 이를 망각속에 파묻고 만다면 아무리 「센세이션」한 교황여행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별 큰 의미를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말할것도없이 교황의 「유엔」 방문의 의의는 그 정신적 동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고 그것은 첫째로 오늘의 교회와 세계의 관계에서 볼수 있다. 지금 이 시간, 교회는 그 현대적 쇄신을 목적하는 공의회를 통하여 오늘의 세계의 구원을 위해 세계와의 진실한 대화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공의회 의제 중 소위 제3의안이라고 알려져 있는 「현대세계에 있어서의 교회」 의안(議案)이 이같은 교회의 태도를 잘 입증하고 있다. 교회는 물론 그 자체로서 이 세상에 기원을 둔 것이 아니다. 그것의 기원은 천주께 있다.
그러나 교회는 그 창립자시요 그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신인(神人)이신 것과 같이 신적(神的)이면서 동시에 인간적이고 『세상의 것이 아니면서 세상안에 있는 것』이다. 그것을 구성하는 성원(成員)들도 세상에 사는 우리인간들이거니와 그것이 구해야할 대상도 이 세상을 이루는 전인류 세계이다. 물론 이 뚜렷한 사실을 교회는 어느 때이고 잊고 있진 않았다. 그러나 과거의 교회태도에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세상안에 들어간다기보다 탕자(蕩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듯 세상이 그를 찾아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편이었다. 그때도 물론 교회는 그 구원의 손길을 세상을 향하여 부단(不斷)히 뻗고 있었다. 또한 끊임없이 생명의 복음말씀을 외쳤다. 그러나 그가 뻗은 손길은 무색할 만큼 외면당했고 그의 외침은 「사막(砂漠)의 소리」와 같이 메아리치지 않았다. 그 좋은 예로 제2차대전 발발시에 수없이 부르짖고 끊임없이 노력한 비오 12세의 평화호소와 조정세의가 아무런 반응도 보지 못하였다는 것을 상기함만으로도 족할 것이다.
결국 지금까지의 교회의 소리는 대화였다기보다 「모노로그」(獨白)에 불과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교회와 세계사이에는 넘기 힘든 장벽이 가로 놓여 있었다. 그러나 이 장벽을 무너뜨리고 또한 세계를 구하기 위해 세계를 기다리는 태도에서 세계안에 들어가는 태도로 교회는 오늘 획기적인 변화를 이룩해가고 있다. 이같은 새로운 정신과 기둥을 교회안에 불어넣은 이가 먼저는 다른 누구도 아닌 고(故) 요안 23세였음은 주지(周知)의 사실이다.
그리고 현 교황 바오로 6세께서 이 쇄신의 노선(路線)으로 교회를 강력히 밀어가고 있다.
그는 이미 성지순례, 인도방문여행으로써 교회 사명의 보편성을 증명하였거니와 이제 다시 온 인류의 대표기구인 「유엔」을 방문함으로써 교회가 세계안에 있고 세계를 위해 있음을, 또한 세계의 문제가 바로 교회의 문제임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번 여행은 앞서의 두번의 여행이 보다 더 종교적 동기였음에 비해 직접세계를 향하여 대화하는 교회의 새로운 모습을 잘 반영시키고 있다.
뿐만아니라 변화된 것은 교회의 세계에 대하는 태도만이 아니다. 세계가 교회에 대하는 태도도 변화돼 가고 있다. 환언하면 교회가 세계를 위한 교회이고 가견적(可見的) 교회의 머리인 교황이 가톨릭교회만의 교황이 아니라 전 인류의 교황임을 세계는 점차로 인식해가고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요안 23세의 평화회칙 「지상의 평화」 및 공의회가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나아가 이번의 교황여행이 「유엔」 사무총장 우·탄트씨의 직접적 초청에 의해서 인데서 잘 증명된다.
우·탄트씨는 교황을 초청하는 그 서한에서 『성하(聖下)께서 「유엔」 본부를 친히 방문하시고 이 자리를 통하여 평화 호소를 발하심으로 「유엔」을 비롯하여 평화를 갈명하고 인류의 단결을 위해 노력하는 세계도처의 사람들은 어느 누구로부터 보다도 더 크고 강력한 뒷받침을 얻게 될 것입니다』고 말하였다. 교회의 소리는 이제 정히 메아리치지 않는 「사막의 소리」도 상대 없는 「모노로그」도 아니다. 인류세계는 교회의 소리와 교황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며 거기에서 현재의 빛과 미래의 희망·항구적인 구원을 찾고 있다.
이같은 변화를 가져온 교황의 「유엔」 방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교회란 다른 무엇도 어느 누구도 아닌 우리들이라는데서 우리 역시 세계를 구해야 한다는 사명의식에 먼저 투철하고 이 세계를 구하기 위해 우리역시 세상안에 뛰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또 대체 그리스도교는 인간이 천주를 찾아가는데서 이룩된 종교가 아니고 천주께서 먼저 인간을 구하기 위해 인간을 찾아오시는 종교이다. 그렇다면 세계교회나 한국교회나 그가 처한 세계와 사회를 구하는 길은 인간을 찾아오시는 이 천주를 모시고 세계와 사회안에 직접 들어가는데 있다.
누구보다도 신자인 우리들이 이 사명에 충실해야하며 그렇지 않다면 세계와 사회는 구원되지 않을 것이다.
특히 교황께서 「유엔」에서 발한 세계평화와 형제적 인류단결 호소를, 우리는 이것이 세계지도자들에게 향한 것만으로 생각하지 말고 바로 우리 각자 특히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을 향하여 말하신 호소로 알아들어야할 것이다.
신자들이 아니더라도 세계의 모든 선의의 사람들이 공명하고 따를 이 사랑의 평화호소를 우리들이 외면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먼저 교황 호소에 호응해야하고 우리부터 우리의 생활주변에서 그리스도의 형제적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그렇게 될때 세계평화는 참되이 달성될 것이다.
그리스도자(者)는 구원의 십자가를 지고 역사의 밤길을 가는 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