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고마비(天高馬肥)의 10월은 독서의 달, 소풍의 계절이자, 동시에 「스포츠시즌」이다.
최근의 전남 광주시의 전국체전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방방곡곡에는 각종 경기시합, 운동회 등이 이철에 성행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스포츠」의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의의를 생각해봄도 결코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스포츠」의 역사도 무려 3천여년의 오랜 것이며 그 기원을 우리는 「올림픽」의 발상지인 고대 희랍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스포츠」의 대중화는 19세기에 비롯했고 먼저는 현대 「스포츠」의 모국(母國)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영국에서, 다음은 독일에서 발전하여 점차로 세계 각국에 보급돼갔다. 역사적으로 보아서 「스포츠」의 대중화는 현대사회의 공업화와 때를 같이 하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날은 모든 공업화된 나라에서 「스포츠」는 국민의 신심단련과 체격향상의 불가결한 수단으로 간주돼 있다. 특히 「스포츠」의 교육적 가치는 지대하며 그것은 청소년들의 잉여 「에너지」에 통풍작용을 하여 성격균형과 자율성을 부여하고 경기의 「룰」과 심판의 결정에 따르는 등으로 질서에 대한 자발적 순종정신을 가르친다. 나아가 사회학적 견지에서 말하면 「스포츠」는 「팀·웤」를 통하여 개인주의에 물들어 분화되기 쉬운 사회대중을 협동정신으로 융합시키고 명랑한 사회건설에 크게 이바지하는 것이다.
비오 12세는 심지어 「스포츠」의 초자연적 효용가치를 지적하고 『「스포츠」는 안이한 생활에 대한 효과있는 악이다. 「스포츠」는 공정한 정신·용기·인내를 가르치며 동시에 결단력과 형제애를 가르친다. 이 모든 자연적 덕성은 초자연적 덕행의 확고한 바탕이다. 따라서 「스포츠」는 인간으로 하여금 가장 힘든 책임까지도 두려움없이 지게끔 단련하여 주는 것이다』고 말하였다.
그럼 우리나라의 「스포츠」는 과연 이같은 「스포츠」 본래의 의미와 목적에 부합한 발전을 하고 있는가? 이 철에 전국체전을 비롯하여 각가지 운동회가 개최되고 국민대중의 관심대상이 돼있는 것이 「스포츠」 이긴 하지만 그것이 우리민족사회안에 건전한 대중화로 발전해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우리나라의 「스포츠」는 소수선수들의 전유물(專有物)에 불과하여 기술과 체력을 겨루는 경기에 불과하다. 체전(體典)이니 운동회니 하는 것은 「쇼」나 다름없이 흉행화 되어있다. 「스포츠」를 통한 대중의 교육, 국민보건의 향상도 기대할 수 없고 선수인 청소년들의 신심단련에도 크게 이바지한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스포츠」의 목적이 시합에 있어서의 승리·명예 등에만 치중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체육회 간부들 간의 감투싸움 선수 및 응원단들 간의 격돌의 불상사를 보기가 일쑤이고 끝내는 이번 광주체전의 경우와 같이 많은 인명 피해까지 초래한 춘사(椿事)를 야기시키게까지 되었다. 이일은 꼭 「스포츠」의 탓만도 아니겠지만 그러나 「스포츠」가 보다 더 건전히 발전해 왔고 승리만을 노리는 경기, 「쇼」나 다름없는 흥행물로 떨어지지 않았던들 그같은 부끄럽고 애통스러운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뿐인가? 각급학교 및 단체의 특기선수양성과 체육회 유지 또 전국체전 같은 것에 얼마나 많은 돈이 소비되고 있는가? 먹고살기도 가난한 우리처지에서는 지나칠 정도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게 소비된 돈으로 모든 문화면의 혜택이 적은 면부(面部)나 농촌에 건전한 「스포츠」 발전을 위한 시설이라도 해주었더라면 그런 고장을 위해서 뿐만아니라 국가사회의 더 큰 이익이 되지 않았을가 생각하게 된다.
국제적 수준의 선수를 양성하는 것도 좋은 일이겠으나 그보다 더 앞서야 할 것은 전체국민보건과 신심단련에 이바지하는 「스포츠」의 건전한 대중화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기회에 정치인, 체육인, 교육자들을 비롯하여 국가사회의 정신적 물질적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는 모든 사람들이 현재와 같은 「스포츠」의 기형적 발전상에 대해 맹성을 촉구하는 바이며 전력을 다하여 「스포츠」의 거전한 대중화를 위해 힘쓰도록 간곡히 부탁한다.
그럼 「스포츠」의 이같은 건전한 발전을 위해 교회로서 할수 있는 일은 없는가? 얼핏 생각하면 교회와 「스포츠」는 상호무관하고 따라서 교회로서 「스포츠」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도 같다. 그러나 본란이 늘 강조해왔고 또한 오늘날의 교회가 공의회를 통하여 시사하고 있는 바와같이 인간과 사회 및 그 발전에 관한한 교회가 도외시해도 좋을 일은 아무것도 없다. 더구나 상술한 비오 12세의 말씀을 비롯하여 현대 여러 교황들께서 지적한 「스포츠」의 인간 교육상의 역할과 사회적 가치를 상기할때 이 분야에 있어서의 교회의 참여의미는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교회가 대하고 구해야할 인간은 영혼만의 인간이 아니다. 육신을 겸비한 인간이다. 따라서 사목일선에 나선 신부·수녀·전교회장들은 영혼의 지도자 혹은 교육자로만 스스로를 생각할 것이 아니고 영혼과 육신으로 결합된 전인간(全人間)을 교육하고 전인간을 구해야함을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 이같은 전인간의 교육과 지도에 있어 「스포츠」는 경시할 수 없는 중요역할을 맡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자리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제의하고 싶은 것은 사제들이나 평신자지도자들이 「스포츠」에 대한 보다 더 깊은 식견을 가져주는 것이며 교회는 그 가진 조직체계를 통하여 국민보건·농촌계몽과 아울러 효율적인 청소년지도·협동정신앙양등 사목적 가치까지도 있는 「스포츠」의 건전한 보급에 앞자서 달라는 것이다. 뜻만 있으면 일선본당 혹은 공소에 대중적 「스포츠」 애호단체를 조직하는 것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이런 단체는 또한 별 큰 구애없이 미신자들을 포옹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교회와 직접관계없이 동민 읍민들로써 구성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될때 이같은 「스포츠」 단체와 그 활동이 오늘날 많이 요구되는 교회와 사회와의 대화에도 크게 이바지 할 것임은 제언할 필요도 없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청주교구가 주최하는 연례청소년(CYO) 운동회나 지난 10월 13일 왜관에서 있은 대구 부산 청주 3교구 성직자 친목운동회 같은 것이 장차 교회를 통한 「스포츠」의 건전한 대중화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또한 기대하여 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