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열시. 종줄을 당겼다. 「사랑의 종」을 치는 것이다. 종치는 복사가 출타하여 대신 종지기가 되었다. 그러면서 지난 6년간의 종지기 생활을 되새겨보는 것이다. 교회의 연륜과 더불어 종소리는 해를 더해 간 것이다. 말하자면 종소리는 전령인 것이다. 이른 새벽 사람들이 새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 눈을 부비면, 보여지기 전에 우선 듣는다. 색갈도 없고 구차한 설문(說文)도 없지만 많은 마음들안에 수놓아 간다.
이 종소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비애락을 꼼꼼히 꼬집어 냈었는가! 확실히 이 종소리를 듣고 섬세한 마음이 주어진 이들은 선율로 그것을 풀어 음악과 시를 남기고 사항을 이것과 반죽해서 소설과 철학을 찾았을 것이리라. 저녁 종소리 또한 그러하여 잠들기전 만상(萬象) 안에 꿈을 펴 주리라. 여느때는 간혹히 또 어느때는 은근히. 천태만상을 부리는 마술사처럼.
허지만 종을 치는 이들의 마음은 한가롭기만 한것은 아니다. 눈보라치는 이른 새벽 언 손을 부비며 노곤한 봄철 단잠을 채 깨기도 전 종줄을 더듬어 규칙적으로 흔드는 동작은 차라리 체념에 가깝다. 몸이나 성치 못한 날에는 수마와 몽룡과 반의식이 작용할 뿐이다. 하루에도 세번이상 일년삼백 예순다섯 날, 쉬는 날 이라곤 성주(聖週)목요일 오후부터 토요일 저녁까지 뿐이다. 하루 적어도 스무번 이상 시계를 쳐다 보아야한다.(습성에 젖으면 후에 육감으로 종치는 시간을 의식하지만) 종치기 한시간전부터 심장의 고동이 서서히 규칙을 읽는다. 경험에 비쳐 말하면 아무리 신체적 조건이 좋은 사람일지라도 3년만 계속하면 약해지거나 혹은 신경질적 사람으로 바뀌고 만다. 비교적 몸이 튼튼했던 우리 복사가 종치기 일년후에 빈혈증에 걸려 이렇게 말했다. 『회장님. 어떻게 6년이상 종치고도 살수 있었읍니까?』 수면 시간이 많아야 할 청년기의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면이 적은 노년기에도 신경을 자극하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으리라.
그렇다고 종지기만이 희생이 많다는 푸념을 말하려드는 것은 아니다. 성교회 안에는 많은 이들을 위한 기도문이 있다.
또 많은 이들을 위한 기도 지향도 있다. 그런데 이종을 치는 이들을 위한 기도문은 물론, 종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한번 해주는 이라도 있는지 모르겠다. 『지체(枝體) 중에 가장 쓸모없어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하니라』하신 말씀이 있음에도….
저가 우리의 지체임에, 저를 위한 따스한 한번의 기도나 애정 어린 단한번의 웃음이라도 보내줌이 마땅하지 않을까? 『주여. 이 종소리로서, 냉담한 이들을 더움게 하시고, 열심한 이들을 치열케 하시며 갈린 형제들을 한우리에 들게하시며, 외교인들을 광명의 길에 인도하소서. 아멘. 안젤루스의 종이여! 힘차게 울려라.』
高가스발(경북 상주읍 서문동 천주교회전교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