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社會 適應 / 許아오스딩(전북 任實本堂)
가톨릭에 대한 일반사회인들의 관념은 각양각색이어서 어떤 사람은 우호적인가하면, 경원시하며 적의조차 품는 자도 있다.
흔히 일반사회 출판물을 통한 가톨릭관의 왜곡 결핍에서 오는 음성적인 중상모략을 대하고 의분을 참기 어려운 반면 교회측의 반응은 의아하리만큼 냉담 무관하여 아쉬움을 금치 못한다. 근년 「모씨의 세계일주 여행기」나 지난 4월호 「사상계」에 실린 「기독교 2천년」이 그좋은 예이다. 이점에서도 「매스콤」에 의한 전교는 시급하다. 한편 의식적인 정교분리의 결과인지 모르겠으나 확실히 종래의 교회는 사회적응내지 현실참여에 무관심하지 않았나 싶다.
지난번 동지의 일반사회인사들과의 대화난에서 항일당시 가톨릭의 불참에 대한 의견에 대해선 사실상 긍정할바가 있지 않나 싶다. 또한 한일회담에 대한 찬반의 와중에서 프로테스탄 목사들의 적극적인 개입의 타당성은 논의로 치고라도, 가톨릭은 국가민족 장래에 직접이해관계가 있는 이런 문제에 대한 관심은 어떠한지 생각해볼 일이 아닌가 싶다.
■ 改宗의 關門에서 / 李龍周(원주시 丹邱本堂)
개종의 관문에서 십년 신앙생활을 되돌아본다. 마치 장님이 돌다리를 두둘겨보며 건너듯 꽤는 착실한 과정을 모색했으나 그것은 오히려 징검다리를 성큼성큼 뛰어넘은 거와 결과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었던가? 십년신앙생활(예비)에 영세를 안받은 것이 자랑은 아니다. 그것은 그런 세월을 보내고는 차라리 받을만한 그릇이 아니었더란 표현이 옳을 것이다. 「비아블」을 읽고 회의에 빠지고 까뮤를 읽고 오히려 교회로 되돌아가던 그런 나대로의 신앙관의 고심끝에 이제 어쩔수 없는 그 막바지에 이른 감이라고나 할까?
연이나 아직은 외롭다. 마치 거친 광야를 나홀로 걸어가는 것 같은 그러한 쓸쓸함과 고독감은 웬일일까? 그래도 10년을 걸어온 발자취기에 되돌아보고 이제 개종의 관문에서 나는 아직 어떤 아쉬움에서 서성거리는 걸까?
■ 따뜻한 손길을 / 金상자(마리안나) (동대문구 청량리 2동산 1번지 10통 4반 조씨방)
은은히 울려오는 새벽성당종소리에 귀기울이다 어느듯 꿇어앉아 기도하는 저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 누구도 아는이 없이 나혼자 너무나 고달펐던 지난날들, 이제는 몸과 마음이 함꺼번에 지쳐버린 자신을 가까스로 지탱하려 노력합니다만 현실은 저에겐 너무나 어귀찬 것인지 모릅니다.
아버지와 동생을 빼앗아간 6.25를 원망하면서도 『잔잔한 바다는 훌륭한 뱃사공을 만들 수 없다』는 말을 마음에 되새기며 두주먹을 쥐고 노력에 박차를 가해 오늘에 이르렀읍니다. 지난 여름의 수마는 이 연약한 저에게도 가차없이 밀려들어 이 조그마한 가슴에 찢어질것만 같습니다. 이젠 지쳤읍니다. 누가 제게 따뜻한 손길을 펴주실 분은 없겠읍니까?
내마음의 위안이 되시고 지도 편달을 해주실 아버지 어머니가 진정 그립습니다. 저는 만21세·덕성여대 약학과 3학년에 재학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