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로마」 성청의 인준을 얻어 준비해오던 남방(南方) 5교구(大邱·釜山·淸州·光州·全州) 연립(聯立) 소신학교(假稱 善牧中高校)가 지금부터 학생모집에 착수하여 내년 봄에는 역사적인 개교식을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먼저 새로 탄생한 또 하나의 「세미나리움」(사제 못자리)를 축하하며 그의 전도에 주님의 풍성한 강복이 있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선목(善牧) 소신학교의 개교를 계기로 우리는 또 한번 한국 교회의 앞날을 판가름할 성소문제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가톨릭에서 해야할 가장 긴급하고 중대한 사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누구나 「성직자양성사업」이란 점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한 군대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유능한 지휘관들의 양성이 급선무이듯이 그리스도의 교회가 살아가는데 성직자의 양성이란 불가결의 요소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자신도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먼저 착수한 사업은 12제자를 선정해서 교육하는 일이었다. 성직자 없는 교회는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성사제 비안네 성인도 이르시기를 『신부없이 본당을 두어보라. 30년이 못가서 교우들은 동물을 공경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신학교는 교회의 심장이다. 인체에 있어서 심장이 드러나게 보이진 않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듯이 성직자양성 사업이 두드러지게 드러나진 않더라도 그것이 곧 교회의 생넝선임을 우리는 언제나 관심밖에 두어서는 안된다. 이와같이 중요한 교회사업에 우리는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가? 한국교회가 당면한 가장 큰 난관은 성직자의 부족이다. 65만 한국가톨릭신자에 6백30여명의 성직자가 있을 뿐이다. 그중에는 외국인 성직자가 거의 3백명이나 차지하고 있다.
이것을 신자의 비율로 본다면 신자천명에 성직자 하나의 꼴이지만 실상 많은 성직자들이 직접 사목을 하지 않고 주교관 학교 출판사 기타 특수한 사업을 하고 있어 실상 신자와 성직자의 비율은 교우 1천5백명에 신부하나 꼴이 되니 성직자 한사람이 어떻게 1천5백명 신자의 영혼을 지도할 수 있는가? 그래서 고해를 제대로 볼수 없고 교리지도도 받을 수 없고 학생회, JOC, 「레지오마리에」 지도신부도 없고 등등 넋두리가 나오게 마련이다.
그뿐인가? 한국의 신부들이 맡은 영혼들은 영세신자들만이 아니다. 전민족이다. 현재 남한(南韓) 인구만도 2천9백40만을 헤아리며 신부 1명에 4만7천여명 꼴이다. 환언하면 한사람의 신부가 한소도시(小都市)의 영혼을 구해야 한다.
우리는 좀더 넓은 각도에서 현실의 우리환경을 넋두리 하기전에 더 많은 성직자양성에 방법을 쓰고 관심을 일으켜야 하겠다. 때는 바야흐로 신학년 입학의 계절이다. 성소문이 열리는 때다. 우리 신부를 원한다면 우리가 양성해야 한다. 성직자 양성을 위해선 첫째로 가정에서 부모님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어야 하겠다. 가정에서 받는 부모들의 교육이란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모든 주교 신부들이 가정에서 나왔고 부모들의 힘으로 되었다는 것을 다시한번 상기하자. 내 가정에서 구세주 그리스도를 대리할 성직자가 나는 일보다 더큰 경사가 어디 있겠는가? 그 경사를 위해서 부모들은 자녀교육의 새로운 계획이 있어야 하겠다. 둘째로 이미 성소를 받고 있는 신학생 수도자 성직자들을 위해 끊임없는 기도가 요구된다. 좋은 뜻을 품고 성소의 문을 두드렸지만 나약한 인간의 결함으로 얼마나 많은 신학생들이 성소의 결실을 보지 못하고 그 문을 등지고 나와야하는가? 그뿐 아니라 경제적 타격으로 「성소」를 갈고 닦는데 얼마나 고초를 겪고 있는가? 언제나 우리들의 기도에서 성소자들이 떠나지 말아야 하겠다.
『추수할 것은 과연 많으나 일군이 적도다』 그 옛날 그리스도의 탄식이었다.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오늘도 여전하다.
이 나라에서 구원을 받아야 하는 뭇 영혼들! 그들도 필경 성직자들의 손을 거치지 않고는 구원의 관문을 뚫지 못할 것이니 영혼을 낚으려는 주인의 심정 오직 답답하랴! 그래서 그리스도는 『너희는 추수주인에게 기구하여 많은 일군을 보내게 하라』는 기구를 당부하셨다.
영혼을 구한다는 것은 인간을 구하는 일이요 인간을 구한다는 것은 온 세상 보화와도 바꿀수 없는 고귀하고 중대한 일이다. 그것은 또한 인간사회와 인류세계를 구하는 것이다. 어느때 보다도 현대가, 어디서보다도 이교적(異敎的) 풍토에 젖어있는 우리나라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구원을 갈구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우리가 해야할 일터에는 일군이 부족하다. 잡초가 무성히 우거졌는데 이 나라 주의 포도밭에는 일손이 부족하다. 삼천리강산 도처에 헐벗고 굶주리고 목말라하는 영혼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의 물을 길이다줄 역군은 너무나도 적다. 성직자들은 목민(牧民)의 역군들이다. 우리나라의 흥망(興亡)도 성직자 성소 증가 여부에 달렸다 함은 과언일까?
우리 모두는 이같은 실정을 깊이 인식하고 이 나라의 성직자 부족에 대해서 다같이 책임을 느껴야하고 물심양면으로 그 육성을 도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