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齋가 대폭 緩和되었다고 한국주교단 단장인 노 대주교가 지난 12일자로 공포했다. 이제 우리나라서도 성회례봉재수일과 사순절중 모든 금요일 외에 육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信心家然 하는 자는 이제 가톨릭의 규율이 많이 해이되었다고 개탄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은 변함이 없고 천국가는 길은 여전히 좁다. 이 기회에 우리는 참회의 意義와 중요성 그리고 그 계명의 새로운 규율을 재고해 보고자 한다. 이것은 공의회가 교회의 본질과 교회와 현세와의 관계에서 우리에게 주는 더 풍부하고 더 깊은 「비죤」에서 오는 것이다. 사실 이번 공의회 동안 교회가 모든 노력을 다하여 그 교회의 秘事를 더 깊이 묵상하고 그 본질을 幅넓게 보았다. 교회는 인간적이요 神的 可見的이요 불가견적 현세적이요 영세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먼저 교회는 자신을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의 행동에 일치시키는 사슬을 깊이하면서 그 모든 지체가 그리스도의 업적에 또 그러므로 그의 속죄에도 참여하도록 불렀다는 것을 한층 더 명백히 했다.
그 위에 교회는 자기 품속에 죄인을 포옹하고 있기 때문에 그를 거룩하고 흠없게 하기 위해 회개와 쇄신의 노력을 끊임없이 계속하고 있다. 이 회개와 쇄신은 내적이고 개인적이어서만은 안되며 동시에 외적이요 사회적이기도 해야한다. 마침내 교회는 이 지상도읍에서 그 사명을 더 완전히 이행한다.
즉 사람들에게 이 세상 재물을 어떻게 착히 사용하며 이 세상의 성화에 어떻게 노력할 것인지를 지시한다. 또 천상 고향을 향하여 순례하는 도중에 이 세상사로 인해 방해되도록 버려두는 위험에서 신자들을 대비시키는 유효한 절제를 그들에게 자극시키기도 한다.
참회의 내적 그리고 정신적인 특징 및 그것이 그리스도와 교회안에 주는 국면은 이 덕행의 외적 실천을 제거하지도 않고 경감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오늘의 사회에 시급히 필요하다. 또 그것은 대 · 소재 이외에 참회의 뜻을 더 잘 실현케 하는 새로운 표현을 발견하도록 교회는 자극을 준다. 그리하여 어떠한 시대에서도 참회는 육체적인 고행을 제거하지 않았다. 사실 우리시대에 있어 육신과 영혼은 피조물로서 신의 성성과 엄위를 인식하기 위해 종교행동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그귀에 만일 우리가 아담의 범죄 이후 영육이 상반되는 원의를 가지고 있다는 우리 본성의 나약성을 고려한다면 육신의 극기의 필요성이 명백히 나타난다. 육신의 극기는 육체에 아무런 비난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아들이 육신을 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기는 정욕때문에 가끔 우리 몸의 감각적인 부분으로 속박하는 인간 구제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육체적 고행으로 인간은 힘을 다시 얻고 부절제로 말미암아 손상된 인성의 품위를 구원의 절제에 의해 치료한다. 新約와 교회의 역사에서 언제나 威脅하는 형식주의와 「바리세이」적인 危險을 거슬러 사도들과 교부들과 교종들은 그리스도의 표양에 따라 단순한 외적인 참회의 형식을 노골적으로 배격해 왔다.
참회하는데 있어 외적행동과 기도, 자선사업 등의 내적회개 사이에 있는 밀접한 관계를 전례기도문과 모든 시대의 영적 著者들은 언제나 긍정했다. 그러므로 교회는 참회의 외적행동의 자발적인 실천과 함께 정신의 내적회개가 동반하기를 신자 각자에게 권한다. 그리하여 신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매일의 생활에 따르는 시련과 희생외에 자발적인 행동으로 참회의 계명에 순종해야 한다. 그러나 참회의 이 계명을 이행하는데 있어 성좌는 우리시대에 더 적합한 방법으로 이 참회의 규율을 재고하고저했다. 주교들이 지방이 사정을 직접 더 잘 알기 때문에 가장 적절하고 또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되는 규칙을 그 지방주교회의에서 주교들이 제정케 했다. 그러나 먼저 교회는 옛 전통에 따라 참회의 계명에 만족을 주는 세가지 원칙을 지시한다.
즉 齋戒(교회는 대 · 소재를 언제나 특히 설교했지만), 기도, 자선사업이다. 이러한 방법은 세기를 통하여 실천해 왔다. 그러나 오늘 우리시대와 각 지방에서의 실천가능성 및 신자들의 처지를 참작해서 이러 저러한 형식의 참회보다 차라리 다른 형식의 참회를 주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생활이 더 어려운 조건에 있는 우리나라와 같은 나라에서는 신자들이 기도가운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밀접히 일치해서 그들의 고통을 주님께 바치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에 더 유익할 것이다. 또 우리보다 더 가난한고 기아에 시달리는 형제들을 위해 애덕을 증거하는 자선사업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나라 주교단이 우리가 참회의 다른 양식이 법령으로서의 권위를 가지기를 원했다.
그리하여 육식을 금하는 소재를 기도와 애덕사업으로 대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사실 매일이 소재날과 다름이 없는 우리나라 형편이고 보면 구태여 금요일 하루의 소재는 그리 큰 의의가 없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한국 주교단은 그리스도의 「바스카」의 비사를 상기하는 時季인 사순절에는 지정된 참회이 날들을 공동으로 거행하는 과거의 전통을 그대로 지키기를 명했다. 그러므로 교회의 이러한 의도를 생각하여 비록 소재를 지키는 참회의 방식은 완화되었다 할지라도 성신강림 후 처음으로 『너희들은 회개하고 또 너희 죄사람을 얻기위하여…』라고 하신 사도 베드루와 또 이교도들에게 『생활하신 천주께 회두케 하라』 하신 사도 바오로의 설교를 상기하고 기도와 자선사업 등으로 대신 참회할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