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벗은 거목 밑에 낙엽이 어지럽게 쌓여 있다. 그것은 어떤 서재속의 생각 깊은 사람의 부정돈한 책상처럼 흩어져있으나 거기엔 산만한 조화가 깃들여 있다. 조락(凋落)의 시절이오면 자연은 형상으로 사고함으로써 우리 또한 그 가운데서 일생을 사색하고 죽음을 음미하게 되는지 모른다. 자연은 이토록 헐벗어가나 낙담하지 않는다. 마치 겸손한 자가 모든 이에게 무시당하나 진실을 믿음으로써 낙담치 않는 것처럼. 자연은 조락의 허무를 미리 생각하여 아예 열매 맺지 않는 적이 있던가? ▲그러나 신앙없는 혹자는 필연한 인간조건인 죽음 앞에 낙담하고 허무를 느낀다. 또 그들 중 어떤 자는 이것을 상상하기조차 싫고 생의 즐거움을 말살 당할가바 짜증을 낼런지 모른다. 허나 어떤 금력과 권력인들 우주정복에 들어간 과학의 힘인들 이 죽음을 피하기 위한 어떤 방법을 가졌는가? 『우리는 수상한 나라에서와 같이 어리둥절 고개를 돌리』거나 시치미를 떼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이 인생을 무의미하게 만드는가? 죽음으로써 모든 것은 끝나고 허무로 마치고 마는가? 범상한 죽음은 차치하고 살신성인(殺身成仁)한 고(故)강재구 소령, 이정엽씨 또는 죽음의 암영에 싸여 고뇌하면서도 남의 암흑을 위해 두눈을 남긴 한 소녀의 인생조차도 남에게 선업을 했다는 그 이상 그들 인생자체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인가? 그들 자신은 지금 허무에 불과한가? 그렇다면 인간존엄성이 무슨 의미와 가치가 있겠는가? 구원(久遠)한 사랑의 동경이 무슨 보람이 있는가? ▲죽음은 확실히 인생목적이 이승에 있지 않음을 말해준다. 상기한 헌신적 사랑의 사람들의 죽음이 암시하고 있는바와 같이 인생은 죽음마저 극복하는데 그 참됨이 있다. 더우기 그것이 살신성인하는 삶일때 그 진가가 발휘되는 것이다. ▲『사랑은 죽음보다 더 강하다』고 하였다. 십자가 위에 인류를 대신하여 헌신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러하다』 그런 사랑은 분명 인생의 의미가 죽음을 초극하고 있음을 밝혀주는 빛이요 진리다. 너와 나 모두, 특히 우리들 그리스도 신자들이 이같은 불멸의 빛이 돼야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각박한 인심, 자기 삶을 위해 남을 죽이기까지 하는 것이 우리네 세정(世情)이라할지라도 그래서 모두가 삶 자체까지 환멸하고 있다할지라도 이 절망의 심야(深夜)를 뚫고, 조락의 계절마저 넘어 회춘과 부활의 동녘이 이 땅에 트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