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복음의 씨앗이 떨어진지는 어언간 1852年이란 적지않은 세월이 흘렀다. 勿論 서구의 그것과 비교한다면 아직도 어리고 유년기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그간 우리의 역사는 다른 나라의 그것과 못지않는 사랑거리가 숨어있다. 「로마」의 百年迫害에 彷佛하는 迫害의 역사가 이 나라에서도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___가 아직도 많은___ 알려지지 않았다면 ___ 오로지 우리들의 소극적인 布敎的 노력 부족에 원인이 있을 것이다.
금년은 丙寅殉敎百週年紀念의 해라는 것을 여기서 새삼스레 말할 필요는 없다. 피의 역사가 있은지 1世紀가 흐른 오늘 우리는 마땅히 우리의 찬란한 역사를 對外的으로 또는 對內的으로 알려야 함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제 우리의 역사가 빛을 발하는 하나의 계기가 온 것이다.
이런 역사의 「에퐁」을 맞이한 우리는 우리의 歷史的 眼目에 대한 反省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單刀直入式으로 말해서 아직도 우리는 對外的으로 우리의 역사를 알릴만한 완벽한 敎會歷史書가 없다는 것이다. 旣刊된 몇권의 歷史書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산발적인 내용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객관적인 역사는 이루어 졋지만 그것을 담아놓을 그릇이 없다는 점은 슬픈 일이다. 아직도 옛날 老人들을 찾아다니며 迫害時代에 남긴 여운을 들으려는 극히 원시적인 한국교회 역사의 동태는 실로 한심스럽다.
불과 5·60年밖에 되지 않은 1個本堂의 경우를 보아도 그렇다. 한국의 3백70여개 본당 중에 본당역사를 정확히 기록하고 본당연혁이나 역사서가 비치되어 있는 곳이 몇군데가 되겠는가? 본당이 그렇다면 敎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제 곧 시복될 순교자들의 이름이 뒤바꿔지고 벌써 세상을 떠난 古人의 이름으로 서신왕래가 있고 선임본당신부들의 성명과 연대수를 혼돈해서 識者들로 하여금 얼굴을 뜨겁게 하는 사실들이 非一非再하니 현 時点에서 歷史의 주인공들인 우리는 너무나 역사의 가치를 외면하고 있지 않는지 스스로 자책해 보아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지난호 本紙에 경남 울산본당의 역사책이 발간되었다는 자그마한 기사가 실렸다.
슬쩍 지나쳐버릴 수 있겠지만 우리는 작은 기사를 크게 「클로즈업」시키고 싶다. 歷史는 지금도 쉬지않고 흔적을 남기고 있다. 만시지탄이 없지 않으나 이제라도 歷史의 눈을 뜨고 後代의주인공들에게 넘겨줄 산 生活을 수집 기록하는데 관심을 모아야 하겠다.
歷史가 과거의 사실을 통한 미래의 교훈을 주는 스승이라고 할진데 단순히 後代에 날려주는 것으로만 만족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과거의 깊은 歷史적인 혜안으로 오늘의 敎會를 올바로 批判하고 내일의 기수로서의 「이니시아티브」를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오늘의 교회가 내일을 위한 뚜렷한 기획이 없다는 것도 그만큼 우리는 歷史의정도에서 벗어난 탓이 아닐는지 모르겠다.
한국교회눈 해야할 당면한 문제들이 많이 있다. 그중에서도 시사성을 띤 歷史문제는 時間이 흐르면 그만큼 「마이너스」를 가져올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각 교회기관 당국자들은 지금부터라도 史料를 수집하는데 계획을 세워야 하겠다. 금년 병인순교 백주년 행사를 내년에 한다고 한다. 그때는 단순히 어떤 피상적인 外的行事로 끝날것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한국교회사를 그 바탕부터 샅샅이 밝혀주는 역사의 새 계기가 마련되어야 할 것을 주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