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경향잡지, 한 집에 한 권 보기』운동을 벌인 적이 있다. 강론대에 선 신부는 간곡한 부탁을 한다.
『여러분들이 쉬지않고 보는 일간지 한달 구독료면 일년을 보고도 남습니다』오가다 마시는 술 한잔이면 한달 분을 볼 수 있고 매일 피우는 담배 한 갑 값이면 한 권을 사고도 얼마가 남습니다.』
듣고 나온 교우는 이렇게 투덜댄다.
『뭐 볼게 있어야지!』
이래서 기껏 벌여본 운동은 공전, 잡지는 5년전이나 이제나 달라진 게 없다. 비단 「경향잡지」뿐이 아니다. 「가톨릭시보」 「가톨릭청년」 모두 한가지다.
교우들이 무성의한 것도 사실이고 잡지나 신문이 별반 볼 것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또 이건 소극적으로 웃어넘기기에는 너무나 중대한 문제인 것 같다. 가톨릭이 사회에 「어필」하는 문화면에서 얼마나 뒤지고 있는가를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 책임은 교우된 우리 각 개인이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가꾸지 않은 곡식이 잘 될리 없고 구독자 적은 잡지나 신문이 발전할 리 없다.
가톨릭잡지나 신문은 우리 모든 신자들의 공동농장이다. 곡식이 안된 걸 개탄했다면 한 걸음 더 나가 잘 되도록 밑거름을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이 의무는 단돈 10원을 내고 잡지나 신문을 보는 적은 행동으로 이행할 수 있다. 10원은 지극히 적지만 70만 교우의 적은 성의가 합친다면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70만이 매달려 벽돌한장 들어올리지 못한대서야 말이 되겠는가?
혹 영혼만 구하면 되었지 신문이니 잡지니 문화니 하는 따위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할 분이 계실지도 모른다. 지당한 말씀이다. 그러나 이 너무나 지당하고 비굴하도록 소극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한국 교회가 몇십년 뒷걸음 쳐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물론 영혼을 돈으로 계산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영혼을 구하는 구령사업에는 경제적인 뒷받침이 절대 필요하다.
가톨릭 신문이나 잡지는 그 구령사업을 지탱하는 굵직한 기둥의하나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가장 적지만 한국 가톨릭에서는 가장 큰 기관지들이 소걸음식 발전을 탈피하여 4,50년 「점프」를 하는 건 우리 각자에게 달려 있다. 바로 내 책임이다.
辛殷敎(忠南 錦山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