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28일 즉 장림수주일(將臨首主日)을 기해 우리말 미사전례가 정식으로 시행된다. 다시말하면 그간 일년 가까이 시험단계에 있던 새미사전례의 우리말부분을 더욱 확장시킨 것이 이날부터 전국에 통일적으로 실시된다.
여기에 있어 우리는 새미사전례를 위한 준비를 갖추고 있는지, 특히 새전례가 요구하는 정신태세를 갖추고 있는지 자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미사예절의 통일성도 문제이고 그간 시험 단계였다는데서 불가피한 현상이긴 했지만 교구마다 혹은 본당마다 미사예절이 조금씩 다르다는 그런 낙맥상은 적어도 11월 28일 이후부터는 소멸돼야 한다고 본다. 또 이런 유의 것은 교구단위로라도 사제들의 새미사예절강습이 실시됨으로써 쉽게 극복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문제시하는 것은 미사예절보다도 전례정신이다. 환언하면 오늘의 한국교회는 새미사전례실시를 앞두고 전례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이것을 우리는 문제시 아니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새미사전례실시란 깊이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한국교회 생명활동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고 획기적인 사건인데도 불구하고 여기에 대한 이렇다할 공적 동향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도대체 대부분의 교구나 본당에서 지금까지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신자들의 전례교육은 물론이요 사제들의 전례교육도 그것 다웁게 있어 본적은 없었는것 같다. 정확히 말해서 전례헌장에서 명시한 의미의 전례정신에 젖을 만한 교육은 아직 없었다.
물론 이것을 우리는 모든 점에 있어 뒤져있다는 그 후진성에 돌리고 말수도 있다. 그러나 새전례헌장이 우리말로 번역출판된지도 이미 1년여의 일이 아닌가? 이것만이라도 정독하였다면 새미사 전례가 공적으로 실시되는 일주일을 앞두고도 이같이 무관심·무표정할 수는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한국교회가 이해하고 있는 새전례란 그 정신이 아니요, 형식의 변화, 용어의 변경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전례헌장실시에 관한 교종훈령이 명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제2차 「바티깐」 공의회에서 발표된 전례헌장이 의도하는 것은 단지 예절형식이나 글귀의 변경이 아니다. 그것은 보다 더 전례헌장 제1조가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공의회 자체의 목적인 모든 신자들의 신앙생활과 전체교회의 내적 쇄신을 위해서이고 나아가 교회일치와 전교활동에 새로운 박력을 주고 전인류를 성교회의 품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다.
과연 교회전례는 인류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도직의 계속적인 수행이며(헌장 제6·7조) 『교회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요,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同上 제10조) 전례에 있어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원생명을 받고 그와 결합되며 그 안에, 그와 함께 살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
전례에 있어 본당은 주임사제를 중심으로, 교구는 주교를 중심으로 천주의 백성이라는 영적 공동체를 이루게 되며(同上 제41조) 드디어는 교종을 머리와 중심으로한 거룩하고 공번된 종도로조차 내려오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룩하게 된다.
전례는 비록 교회활동의 전부는 아니라할지라도 그것이 지향하는 정점이요, 그 모든 힘의 원천이며 『전례참여는 신자들이 진정한 그리스도교적 정신을 펴낼 첫째요, 또한 불가결의 샘이다』(비오 10세의 말씀 同上 제14조)
이같이하여 전례를 통해서 인류는 구원되고 만민이 그리스도의 몸이요 「일치의 성사」인 교회와 결합되며 드디어는 온 우주가 성부·성자·성신 삼위일체와 영원히 일치하게 된다.
따라서 전례를 떠나서는 우리 각자의 신앙생활은 물론이요, 교회는 그 생명활동의 힘을 잃게 된다. 전례가 없으면 교회의 사제직도 없고 그것은 바로 인류구원의 길의 단절을 뜻하는 것이다. 이것이 전례의 본질이요, 그 중요성이다. 그러기에 헌장은 『영혼의 목자들이 전례를 거행함에 있어 다만 유효하고 가합한 집전을 위한 법규를 준수할뿐아니라 신자들로 하여금 잘 이해하고 능동적으로 또한 효과적으로 전례에 참여케 하도록 유의해야 한다(제11조)』고 지시하였고 먼저 『사목자들이 전례의 정신과 힘에 온전히 젖어있어야 한다(제14조)』고 강조하였다.
그리하여 여기서 부터 일체의 사목활동이 출발하고 여기 즉 전례에 또한 그것이 귀일하도록 명하였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전례중에도 가장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또 역할을 하는 「바스카」미사 거행, 즉 미사성제에 있어 그러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전례와 신앙생활을 전례와 교회사목을, 개념으로뿐아니라 실제로도 분리하고 있다. 아니라면 공의회가 제시할뿐아니라 주 그리스도께서 요청하신 교회쇄신과 일치를 위해, 또한 내일의 한국교회의 지대한 발전을 위해 무엇보다도 중대한 계기와 바탕이 될 새미사전례실시를 앞두고서도 이같이 조용하고 무관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교리지도나 강론에 있어까지 전례에 대한 언급조차도 없다는 것이 대부분의 본당실정일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교회의 장래와 성장은 다른데 있지 않다. 그것은 전례가 참으로 이 교회안에 생활한 것으로 발전하느냐 않느냐에 달려있다. 전례가 생활한 것이되면 교회가 생활한 것이 된다. 모든 사목자들과 신자들이 전례정신에 젖게될때, 특히 미사성제에 있어 신자들이 본당신부와 주교를 중심으로 함께 기도하고, 함께 제헌하고, 함께 그리스도의 성체를 나눌때 본당과 교구는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룰 것이며(코린토전서 10장 16-17절 참조) 이같이 그리스도에 살고 그리스도와 결합된 한국교회는 또한 천주의 백성다웁게 이 민족사회안에 질머진 그 구속사명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싯점에 있어 한국교회가 해야할 첫째일은 다른 것이 아니고 모든 힘과 방법을 다하여 전례교육을 실시하는 것임을 거듭 강조하고자 한다. 그것은 미신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과 함께 중대하며 오히려 그보다도 더 긴급하고 더 근본적인 과업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전례는 모든 사도직 활동의 힘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