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관심을 모으고 1962년 10월 11일 고(故)요안 23세 교종에 의해 소집되었던 역사적인 제2차 「바티깐」 공의회는 드디어 오는 8일 -성모시잉모대 축일을 기하여- 성대한 폐회식전으로 대단원(大團圓)을 이루게 된다. 그간 3년 2개월간 4차회기를 통하여 신자들의 신앙생활과 교회쇄신, 그리스도교일치, 나아가 현대세계와의 대화를 목적하고 이 공의회가 이룩한 업적은 실로 위대하다 아니할 수 없다.
물론 공의회가 목적한 바는 아직 성취되지 않았다. 그 결실기는 오히려 이제부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의회는 이미 그간에, 교회내에는 신앙의 각성과 쇄신의 기풍을 힘차게 불러일으켰으며 전체 그리스도교계(界)에는 일치의 대화분위기를 조성하였고 인류세계는 또한 이를 계기로 가히 「메시아」적 「비젼」에도 비길 수 있는 기대와 희망을 이 교회에 대하여 다시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과연 공의회는 교회를 위해서뿐 아니라 인류를 위해 신세기(新世紀)의 문을 열었다. 그것은 교회와 이땅에 현존하시는 구세주 그리스도를 더욱 뚜렷이 현시(顯示)하면서 그를 중심으로 온 인류를 한품에 안는 새 날을 동트게 했다. 그러므로 공의회는 그 자체로서 오늘의 교회와 세계에 내려진 천주님의 특별한 은총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에 우리는 이 시간에 이같이 막대한 은혜를 주신 천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면서 그 은총을 헛되이 하지 않게끔 공의회의 정신과 가르침을 우리 각자의 신앙생활에서부터 실현시켜 가도록 다시 굳게 다짐해야겠다.
공의회가 다룬 문제들은 역사상 그 유례를 볼 수 없을 만큼 방대한 것이었다. 교회는 무엇이냐 하는 설문에서 출발하여 교회의 본질, 그 사명, 그 전례, 사목상의 문제, 포교, 기타 이와 관계되는 모든 문제를 다루면서 그럼 이같은 교회는 현대세계에 있어 그 정신불안과 빈곤, 전쟁과 평화 등의 제문제 해결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 인류의 공동선추구에 이바지할 길을 모색하였다. 그리하여 교회헌장 전례헌장, 그리스도교일치율령 등을 위시하여 공의회가 내놓은 헌장율령선언문 등은 모두 16종에 달한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말하고자하는 것은 공의회가 반포한 제 율령의 구체적인 설명이 아니다. 그것의 실천이다. 앞서도 지적한 바대로 공의회의 결실기는 이제부터이다. 이제부터가 쇄신의 시작이다. 지금은 토론의 때가 아니다. 토론으로써의 공의회는 12월 8일로 종결되고 지금부터는 실천과 행동으로써의 공의회가 시작된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교종 바오로 6세께서는 이같은 취지를 강조하여 지난 11월 18일 율령반포 공개회의 중 행한 연설에서 공의회작업을 농사에 비겨 이제까지의 일은 쟁기로 땅을 갈아제치는거나 같았고 풍성한 결실을 가져올 과목(果木)을 심는 것은 지금부터의 일이라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공의회가 어떤 결실을 맺느냐는, 신자인 우리 각자가 이에 대하여 어떠한 자세와 태도를 취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역설하였다.
그래서 그는 또한 이같은 중대한 시기에 필요한 천주님의 더 큰 은총을 구하고 공의회에서 밝힌 진리와 사랑의 「메시지」가 온 세상방방곡곡, 교회 모든 생활부면에 전달되고 실현되기 위해 공의회가 마치는 12월 8일부터 내년 성신강림주일까지를 특별기도 성년(聖年)으로 정한다고 발표하였다.
정히 이제부터가 공의회 성패(成敗)를 판가름하는 결정적 시기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각자의 태도여하에 달려있다.
비록 공의회에서 아무리 훌륭하고 심오한 율령들을 반포하였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이를 실천에 옮기고자하는 용의와 노력이 없다면, 심오한 헌장인들 무슨 소용이며 훌륭한 율령인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도대체 공의회자체가 하나의 공념불(空念佛)에 그치고 말것이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우리는 그 옛날 사오로가 그리스도의 종도 바오로로 회개한 그 결정적인 시간에 그가 발한 그 물음, 그 기원 『주여, 나에게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를 먼저 간절히 되풀이하고 깊이 우리의 신앙생활자체를 반성하면서 우리도 이 시대의 그리스도의 사도(使徒)가 되야겠다는 결의를 더욱 굳세게 가져야할 것이다. 그러자면 그같은 종도가 지난주일 서간에서 우리를 깨우쳐 준대로 우리는 이제 잠에서 깨어나 어두움의 행실을 버리고 광명의 갑옷을 입어야겠다. 왜냐하면 밤은 새고 날은 밝았으며 공의회로서 신세기(新世紀)가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광명의 갑옷,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이다. 묵은인간을 벗고 새인간인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정신을 입는 것이다. 공의회가 3년 2개월을 두고 모든 토론과 심의에서 추구한 것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 그리스도외에 그 누구도 다른 무엇도 아니다. 우리 신자 각자로부터 시작하여 전체교회가 이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정신을 참되이 또한 새롭게 살고 『길이요, 진리이요, 생명이신』 그를 현대에 증거함으로, 그 그리스도안에 현대와 전 인류세계를 구원하는 것이다.
『만사를 그리스도안에 통합하다』(INSTAURARE MONIA IN CHRISTO) 바로 여기에 공의회가 추구한 교회쇄신과 일치, 세계와의 대화의 출발점이 있고 이것이 또한 모든 과업의 중심이요, 궁극목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공의회가 말하는 쇄신과 현대화는 결코 현대사조와 풍조에 영합하기 위해서가 아님을 강력히 천명하며 동시에 그런 관념이 우리안에 우려(憂慮)의 뜻에서든지 혹은 반대로 환영의 뜻에서든지 있었다면 이는 공의회의 이도자체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이고 근본적으로 그릇된 인식이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끝으로 소망하는 것은 우리의 목자이신 주교님들과 신부님들이 우리 평신자들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공의회 정신으로 선도해 주셔야겠다는 것이다. 이제까지로 보아서는 한국교회의 평신자들은 공의회 이전에 처해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 중요 이유는 아무도 우리를 그길로 깨우쳐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의 사목지도는 우리를 이같은 정신의 후진성에서 쇄신으로 이끌어주는 것이기를 간절히 탄원해 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