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에 접어들면서 으례 온 세상은 크리스마스 기분으로 들뜨게 마련이다. 우리나라에도 최근 몇년동안 급진적으로 크리스마스 축하행사가 부쩍 늘기 시작했다.
8.15이전만 해도 크리스챤들 외에는 거의 대다수가 그리스마스의 개념마저도 갖지 못하고 있었지만 8.15이후 갑자기 구미풍물(歐美風物)이 이 나라를 휩쓸자 거기에 크리스마스가 끼어 들어왔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민족이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고 있지만 그 실 그날 탄생하신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전연 모르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구태여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안다고 버틸지 모르겠으되 그들이 알고 있는 그리스도는 우리 크리스챤들이 알고 있는 그리스도와는 아마 거리가 멀 것이다.
한 마디로 구미(歐美)의 문화를 지탱해온 「크리스치아니즘」이 한국에 있어서는 그 알맹이를 잃어버리고 껍질만 수입된 것이다. 그래서 성탄절이 오면 진정 그것의 참뜻은 망각된채 허식(虛飾)에만 치중된다.
이제 우리는 간단히 성단절의 유래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짓밟히는 크리스마스의 퇴폐상(頹廢相)을 몇가지 열거하면서 우리가 가져야 할 정신적 자세를 말해 보기로 한다.
성탄 즉 오늘의 12월 25일은 역사적으로 볼때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정확한 일자는 아니다. 초세기 지방에 따라서는 1월 6일 또는 다른 날에 크리스마스를 지내오다가 12월 25일로 정한 이유는 그날에 「로마」인들이 태양신을 섬기던 날이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로마」인들은 일년 연중행사로서 이날을 태양신의 축일로 지냈고 이날은 온통 「로마」인들이 분주하게 서성대는 날이었다. 「로마」인들의 미신정신을 타파하고 그날 좀 더 조용하게 지내기 위해 참된 태양신이신 그리스도의 탄일로 정한 것이 오늘날 12월 25일이 크리스마스가 된 유래이다. 그러므로 크리스마스는 거룩한 밤 고요한 밤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유래를 가진 성탄절과 오늘날 우리 주변의 성탄절은 얼마나 그 방향을 달리하고 있는가? 거룩한 밤이어야 할 성탄의 밤은 온통 죄악의 밤이 되었고 고요한 밤이 되어야 할 이 밤이 소란과 무질서의 밤이 되고 말았다.
그 옛날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상기해보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여관과 호텔에는 사람들이 가득 가득차 있어 그리스도가 탄생하실 장소가 없었다. 그래서 고요한 동굴을 찾아 드신 것이다.
오늘 이 시대 우리나라 서울이나 대도시에서 그리스도가 탄생하신다고 가정해 볼때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호텔마다 다방마다 음식점마다 초만원인 그런 곳에 그리스도가 탄생할 장소는 없을상 싶다. 이 시대에도 그리스도는 하는 수 없이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는 고요한 마을의 양간으로 가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통탄한다. 성탄밤에 서성대는 남녀들의 무리를! 그들은 진정 「홀리·나이트」가 아니고 「섹스·나이트」 「극장 나이트」 「다방 나이트」를 즐긴다. 그들에게는 인류의 죄를 씻어주는 구세주가 아니고 방중의 통행금지를 해제해주는 구세주로 나타난다. 그 옛날 유태인들이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몰랐기 때문에 도리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한 것을 슬퍼했다면 오늘날 많은 이가 그리스도의 성탄절을 알지 못하고 이 밤을 더럽히는 것을 우리는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 우리가 생각할 것은 성탄절에는 으례 산타클로스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 본래의 뜻인 즉 그리스도와 같이 가난한 자를 도와주고 위로하자는 것이다. 이같이 배고픈 자에게 빵을 주는 사랑의 성탄절이었지만 이제 와서는 부자가 가난한자를 돕는 성탄이 아니라 가난한자가 부자에게 선물을 바치는 또 하나의 모순된 성탄절이 되고 말았다. 환언하면 돈 있는 사람이 가난한자를 돕기커녕 반대로 가난한자의 피를 착취하는 성탄절이다. 인사체면을 위해서 윗사람에게 아부하기 위해서 밥줄이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아래 사람과 서민들은 피를 뽑아서라도 성탄선물을 바쳐야 하는 슬픈 성탄절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져야할 성탄절의 기본자세는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저 세속의 성탄기분에 휩쓸리지 말아야 겠다. 고요한 성탄절을 맞이해야 겠다. 성탄 「파티」를 계획하기전에 우리는 성탄미사를 준비해야 겠다. 「그리스마스」의 뜻은 「그리스도의 미사」라는 뜻이다. 따라서 성탄밤의 참뜻은 밤중미사에 참여하고 그날 천사들이 보(報)한 평화와 생명의 주이신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에 모시는 일이다. 소란한 「파티」나 외적행사 때문에 미사에 늦어지는 일이 없어야 겠다. 거룩한 밤을 술이나 춤으로써 더럽히지 말아야 겠다.
또 하나는 상기한 바와 같이 크리스마스는 가난한자의 밤이다. 우리는 이런 기회 가난한 자를 돕는 애덕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현대에 그리스도가 강생할 움막과 판자촌, 불우한 사람들이 사는 곳을 찾아야 겠다. 하나의 형식적인 크리스마스 「카드」 보다도 따듯한 물 한잔이라도 가난한자를 대접하는 성탄절이 되어야 한다. 본당의 모든 단체에서 계획한 성탄축하 「파티」 축하예물을 우리 주변에 헐벗고 떨고 있는 불상한자들에 돌려야 하리라. 이렇게 우리 그리스챤들이 솔선수범함으로써 더렵혀지는 크리스마스밤을 정화하고 명실공히 거룩한 밤 고요한 밤이 되게해야 하겠다.
이제 바야흐로 새로운 성신강림을 빌어 우리 마음과 생활, 온 땅의 모습을 새롭게 하고자 열렸던 공의회는 종결했다.
우리의 마음과 생활 온 땅의 모습을 새롭게! 이는 우리 각자의 삶과 생활주변, 사회와 온 세상에 그리스도가 충만히 강생함으로 써다. 이번 성탄에는 이같은 그리스도탄생이 실현되기를 기원해 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