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 일간지에 거리에서 도둑을 붙든 한 소녀의 무용담이 실려 있었다. 그녀는 몇달전 회사공금을 가지고 가던 중 낯모르는 사나이에게 사취당했는데 우연히도 버스 속에서 그 사기꾼을 발견하고 거리로 뛰어 내려가 붙들고 늘어지는 통에 백주의 날도둑을 처녀가 단신으로 잡은 이야기다. ▲도둑질치고 안나쁜게 있겠나만 그래도 이런 지능적인 사기한만큼 비열한 족속도 드물 것이다. 그들은 대개 어수록한 촌사람이 아니면 세정에 서툰 그런 가난하고 나약한 서민을 속이고 울린테니 말이다.
몇해전 이태리 영화 「카피리아의 밤」 속에 사기꾼에게 속는 한 절실한 여인의 모습이 생각난다. ▲비록 매소부일 망정 마음은 무구하리만큼 순정인 카피리아는 자신의 처지에서 헤어나려 갖은 애를 쓰나 그때마다 사기꾼한테 비참하게 속아왔다. 마지막 그녀에게 극진히 친절한 한 사나이를 따라갔으나 그 역시 그녀의 전재산을 몽땅 빼앗아 달아나버린다. ▲적막한 숲속, 붉은 낙조(落照)가 쏟아지는 아름다운 호수가에 카피리아는 인생에 대한 처절한 환멸과 고독으로 땅바닥에 마구 딩군다. 그러나 이윽고 즐거운 마을축제의 무리 속에 끼어가는 그녀의 눈엔 눈물이 듬북실렸으나 그 입술엔 신비한 미소가 번진다. 그 웃음은 역설도 아니요, 오히려 슬픔의 극치를 통해 정화된 마음의 반영이며, 다시 인생을 긍정하는 웃음이다. ▲세상에 악이 있는 한 우리들의 고통도 필연한 것이리라.
그러나 우리의 이지로서도 설명할 수 없는 세상의 온갖 비정과 기만과 모욕과 소외, 그러한 모든 고통이 단지 절망과 좌절과 갈등과 회한으로만 끝난다면 우리의 생은 무의미하고도 저주받은 번뇌의 나락에서 헤어날 길이 없을 것이다. 『고뇌를 통해 지식은 온다』는 말과 같이 우리는 언제나 기쁨보다는 오히려 고뇌를 통해 인생의 참다운 뜻을 깨닫고 나아가 생을 더욱더 긍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거리엔 바야흐로 크리스마스 축제의 기운이 무르익어 간다. 그 중에서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 말 못할 회한에 눈물짓는 이는 얼마나 많을까? 그들은 비록 고통 중에 있으나 인생에 대한 사랑과 성실과 희망과 관용을 잃지 않으려 노력함으로써 그들과 마찬가지로 나면서부터 집도 없이 헐벗은 어린 예수를 따뜻한 미소로서 맞이할 수 있게끔 천주께 간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