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콤」(大衆傳達)에 관한 공의회 율령을 보면 『모든 교구는 해마다 한 날을 정하여 신자들에게 출판 포교의 의무에 있어 그들에게 부과되어 있는 사명을 깨우쳐 주고 기구중에 그를 기억케 하고 또 이를 위한 성금을 바치게 하고 있다』 한국가톨릭에서는 이 율령이 나오기 전부터 6旬 주일을 출판물보급주일로 정하고 이에대한 정신을 고취해왔다.
교회에서 붓대로 봉사하는 자들의 고귀하고 결정적인 소명은 대화를 주선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일까? 대화없이 번영된 사회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화는 생활의 법칙이다. 언어는 또한 대화의 훌륭한 방법이다. 그런데 우리 신자에게는 언어가 특수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말씀(로고스)이 聖三의 현의 속에서의 예수의 이름이기도 하다. 하느님이 이 아름다룬 세상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러나 만일 성자(말씀)를 같이 주시지 아니하셨다면 이 세상은 쓸쓸했을 것이다. 『이에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시도다』 말은 이처럼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것은 마음속에까지 반향하는 것이기 때문인 것이다. 영원으로부터 하느님이 생각하고 표현하는 이 말씀은 진리와 사랑의 말씀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성삼의 표로 印을 받은 붓대로 봉사하는 이들이 양심의 원리에서 기록한 글은 자연적인 요구에서 진리와 사랑의 글이 아닐 수 없다. 주는 자가 있으면 우리는 받기만 하면 족하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는 良書를 읽으면 된다. 이미 旣刋도 있거니와 획기적인 가톨릭全書의 연차 대출판을 위시해서 한국 가톨릭 여러 출판사에서도 좋은 서적이 속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신자들이 독서력이 없다는 것이 중평이다. 이는 마치 성자(말씀)가 이 세상에 강생하시기 이전의 세상과 같이 우리 신자들의 마음은 메마르다는 것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가톨릭 출판물을 발전시키려면 신자의 협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자기가 먼저 구독하고 남에게도 구독케 해서 독자를 많이 만드는 일이다.
다음은 보급문제이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포교의 황금시대라 불린다. 이르는 곳마다 좋은 씨가 뿌려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성직자의 수 부족은 여전하다. 종전에 해온 방법으로 한알씩 씨를 뿌려서는 형편없다. 입으로 교리를 전하는 동안 봄은 지나간다. 과거에 우리는 점심을 가져다니면서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입으로 전교해왔다. 오늘도 물론 이러한 방법으로 많은 성과를 얻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과거는 말의 세계라면 현재는 글의 세계이다. 좋은 씨를 뿌리기 위해서는 출판물이 무엇보다 좋다. 여기 「매스 메디아」(大衆傳達 媒介體)가 동원되어야 한다. 가톨릭 잡지 신문 서적이 많이 출판되고 널리 보급되어야 한다. 여기 또한 「시네마」 「라디오」 「텔레비」 등 현대 「메스 메디아」를 이용해야 한다. 이점 한국가톨릭은 만시지탄이 없지 않다.
한국 주교단에게 연내에 방송국 하나 이룩하기 위한 노력을 기대할 수 없을까? 이 기회에 교회성서 판매하는 분들에게 한마디 안할 수 없다. 한말로 그 판매 활동이 부진하다는 것이다. 성 바오로 수도회 「성 바오로 서점」 분점 개업의 소식은 경하할 일이오나 대개의 성서 판매소는 위치조차 불명하고 성당 구내에서 구둘방(안방) 판매 행세를 할 뿐이다. 이왕 장사를 할 바에는 商術이 필요하지 않을까? 도시 중심가 진출, 조속한 신간서적 구입 및 신간 소개안내, 종업인의 친절, 미술면에서 본 서적 진열 등을 고려하지 않으면 고객을 끌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사치스러운 말을 한다고 할지 모르나 「매스 콤」의 기술면의 부족으로 인해 구원의 말씀 던잘이 구애를 받는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동 율령은 말하고 있다. 또 신문, 잡지, 방송 등을 올바로 사용하기 위한 대상자들의 계몽 교육은 속수무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끝으로 신문 잡지 서적 등이 소요되는 경제적 지출은 물론 막대한 것이다. 우리도 나라의 경제개발의 덕으로 물질문명의 혜택을 많이 입고 있다. 그런 의미로 후진성을 탈피했다고 상을 줄만하다고 최근 어느 외국신문이 칭찬한 바 있다.
그러나 구미의 가톨릭신자들이 입고 있는 출판문화재에 비하면 우리 걸인이라 해도 좋다. 예를 들어 우리는 언제 저 유명한 희랍 및 라띤 敎父全集같은 것을 번역해서 읽을 수 있을까. 가까운 예로 잇달아 나오다시피 하는 교종의 교서 등의 번역문을 언제 제때에 읽을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우리 후손에게 物質財 뿐 아니라 精神財도 물려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진리를 전파하고 옹호하여 그리스도교적 정신재를 남에게 전달하는 것을 특히 목적으로 하는 가톨릭출판물을 원조하는 것은 신자들의 의무이다.
「매스콤」 율령은 경제적 및 기술적 영향을 크게 가진 단체나 개인들에게 재정적으로 혹 기술적으로 참된 문화와 사도직이 봉사하는 출판물을 성의껏 도우기를 간곡히 부탁하고 있다. 금년 출판물 보급주일의 성금은 특히 성서출판을 위해 사용키로 되어있다 한다. 즉 성경을 안 읽는다는 오해를 받고 있는 우리이다. 사실인지도 모르나 그래서 쉬운 현대용어로 새로 잘 번역된 성경을 염가로 보급시켜 읽도록 하자는 것이다. 여기 신자들의 성의를 촉구하는 바이다.
오늘 우리는 가톨릭 출판물 보급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 보자. 동시에 수고하는 분에게 감사를 드리고 그들을 위해 기구하자. 그들의 노고는 언젠가 한번 풍부한 결실을 볼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 각자 또는 가톨릭 운동 단체는 좋은 출판물이 많이 나오도록 노력하고 그 보급과 후원사업을 일으키자. 우리 가정에 있는 추한 책들을 불살라버리고 가톨릭 서적을 사들여 가정마다 가정성서문고를 만들자. 이렇게 출판으로 포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