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도 지나고 이제 바야흐로 태양은 그 냉랭하고 침침하던 겨울의 모든 하늘을 뚫고 서서히 따사로와지는 계절이 되었다. 해마다 이 철이 되면 학교앞은 때 아닌 인파 속에 분잡하기 마련이다. 겨울동안의 웅크린 칩거생활을 훌훌히 벗어 던지고 각양각색의 눈부신 색채속에서 부지런히 동작을 계획하는 모든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입학식이며 졸업식이며 하여 학교가(街)는 갑자기 활기를 띠우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람들의 따뜻한 미소와 꽃다발에 싸여 졸업을 하는 청년들을 바라보는 것은 참으로 즐겁고도 벅찬 느낌을 가지게 한다. 젊은으로 팽팽한 양 어깨를 하고 그들은 희망과 이상으로 들끓는 가슴으로 한 사람 한 사람 졸업의 대문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분비는 사람들과 축하의 부산스러운 말소리와 아름다운 꽃빛깔을 배경으로 흰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어대는 그들의 표정을 얼핏 일별했을 때의 느낌인 뿐이다. 조금만 주의해서 그들 하나하나의 그 의례적인 수인사를 보노라면, 그리고 웃음이 가셔진 후의 그들을 관찰하노라면 우리는 또 하나의 다른 강력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음도 사실이다. 그것이야말로 바로 이즘 청년들이 곧잘 회화에 올리곤 하는 불안과 실의의 느낌인 것이다. 사실 오늘날처럼 각박한 현실에서 특히 우리나라같이 여러가지 면에서 어렵기 짝이 없는 풍토에서 미래를 개척하려는 청년 제군에게 있어서 그러한 고민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가톨릭의 청년들이 아닌가. 그런즉 영원한 희망에 전 존재를 걸고 사는 우리 가톨릭청년에게 있어서는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근본적 의미의 실의란 사실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온 생명인지, 어디로 방향지어져 있는 존잰지, 궁극적인 생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이미 너무도 확언히 깨닫고 있는 인간에게 있어서는 적어도 그러한 심도(深度)를 가진 실의를 상상할 수가 없는 때문이다.
물론 현실은 살기 어렵다. 우리는 이점을 긍정하지 않아서는 안된다. 그러나 우리는 목적없는 습관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는 너무도 다른 인생관을 가진 사람들이요, 본능적인 생의 맹목성만으로 스스로를 존속시키는 많은 불행한 사람들보다 하나 더붙여 더욱 그 생의 생다운 의미성을 일찌기 깨달았고 확신하여 온 사람들이 아닌가.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홀로있는 조용한 시간에 참으로 깊이 우리에게 그렇듯 복된 인식을 주신 자비로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하튼 재언하지만, 현실은 살기 어렵다. 그것은 하루도 인간을 평화롭고 조용한 상황 속에 버려두지 않으려 한다.
때로는 폭풍우처럼 때로는 성난 맹수처럼 거센 세력으로, 그것은 있는 힘을 다하여 우리의 전신을 들까불리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가시적(可視的)인 힘 앞에서 어쩔줄 모르고 혼미해질 만큼 어리석을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성들여 갈고 닦아온 꿋꿋한 지성으로 진실로 의미깊은 가톨릭의 정신에 입각하여 성실히 자기가 할당 받아온 양(量)만큼의 인생을 살아갈 때, 모든 어려움은 그것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욱 깊은 의미를 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가톨릭학생으로서 하던 일을 졸업후에는 어떤 방법으로 지속할 수 있을까?
학생들은 졸업하면 대개 직장을 가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 주의를 완기시키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학생시절에는 학생회니 기타 가톨릭 「악숀」 단체에서 열심히 일하고 자아완성을 위해 노력하던 사람들이 졸업함과 동시에 서서히 그 열성을 식혀 가톨릭도 그만 졸업을 해버릴려는 경향이 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갓 뛰어들어온 사회에서 그 일원으로 생활을 영위하다 보면 지금껏 알지 못했던 많은 복잡한 문제들을 만나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자기영혼 문제에 대해 신중한 관심을 기울일 정신적 시간적 여유마져 잃고 말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보다 중요한 것 보다 궁극적인 것을 향해 우리의 고개를 돌릴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바쁘다 바쁘다에만 몰려 의미를 돌보지 않는 생이 그것의 몇 십배로 더 바빠진들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런즉 우리들은 그 바쁘고 복잡한 시간 틈틈을 되도록 의미를 위해 살도록 노력할 것이요 직업별 몇몇 가톨릭 「악숀」단체에 가입하여 힘자라는데까지 성실히 자기의 역량을 발위할 것이 무엇보다 우선적인 문제일 것이다. 그리하여 나날이 변천발전하여 가는 현실 속에서 조금도 뒤떨어지지 말고 명석하고 정확한 가톨릭적 안목으로 새롭게 부딪치는 제문제들을 관찰 판단하여 언제 어디서나 현대교회가 요구하는 올바른 행위를 실천할 수 있을 때 우리들의 인생은 보다 알차고 보람있는 인생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