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을린 연통처럼 겨울도 이젠 찌들대로 찌들었다. 그러나 난로를 떼기도 아쉬운 그런 어느날 문득 쌀쌀한 들판을 찾아오면 묵은 삶을 벗고 잘 돌아왔구나 싶은 흐뭇한 歸依마저 느낀다. 얼음이 풀려 부드러운 논바닥이 검게 터있는데 논두렁 응달엔 아직 殘雪이 남아있다. 벌판 한가운데로 뻗어간 신작로길엔 우차의 요롱소리 한가히 멀어져간다. ▲벌판이 끝나는 곳에 흰 모래사장이 펼쳐지고 강변으로 내려가면 나룻배 하나가 어느 옛적부턴지 얼음이 산산히 깨어져 흩어진 강기슭에 쓸쓸히 머물러 있다. 기슭을 따라 가다 마른풀이 엉성한 둔덕 및 양지바른 곳에 앉으면 강물은 미끌어지듯 고요히 흐른다. 햇살이 내리는 은빛 수면에 가다금 잔물결이 흐느끼듯 산산히 흩어져 내린다. 강건너 앙상한 긴 회초리 다발같은 이름모를 관목숲속에서 새가 우짖는다. ▲그너머 멀리 강뚝 위로 넘어오는 하늘은 젖빛으로 드리워져 있지만 그위로 점점 높아갈수록 맑은 비취빛 하늘이 투명하게 빗겨있다. 이렇게도 햇빛 밝은 부드러운 초봄의 속삭임과 나란히 우리의 내적 생활엔 보속과 수난의 잿빛 절기가 깃들여 있지 않는가? ▲인간의 행복은 절정에 이를 때 오히려 상실의 비애를 예감치 않고는 못배긴다. 그래서 워즈워즈도 이렇게 읊었다. 『사랑을 아는 이의 귀에만 대고 짐짓 이야기해 보겠노라…나의 말발굽은 한발 또 한발 멎지 않고 내내 걸어만 가네. 그때 오막살이의 지붕위로 갑자기 밝은 달이 빠져 버렸네. 무슨 부지럽고 허튼 생각이 사랑하는 머리엔 기어드는지. 「오 하느님」 하고 혼자 외쳤네. 「혹시나 루이시가 죽지 않는지」』 여기 젖빛봄하늘에도 반투명의 낮달이 반쯤 깨어진채 걸려있다. ▲멀리 보라빛 산아래 장난감 같은 기차가 지나간다. 문득 얼마전 이 고장 동료자매가 주는 접에 몇백원짜리 사과를 대견스러운 선물로 바랑에 질머지고 떠나간 「예수의 작은자매회」 H수녀가 생각난다. ▲옮겨간 임지에서 일전 편지에 그녀는 이런 말을 해왔다. 『평화와 기쁨을 많이 누리세요. 작은 자매가 되어 겉으로 거지행세를 할망정 이보다 더 흐뭇한 實存이 어디있을까?』 상실과 희생의 의미, 고통과 고뇌 자체는 구토가 나리만큼 괴로운건데 이를 통해 다시 그 무의미한 인생을 끝없는 사랑의 투쟁으로 긍정하지 않고는 얻어질 수 없는 끝없는 安住가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