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한국교회의 쇄신사업도 모색만 할 것이 아니라 미숙한대로 실천에 옮겨야 될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공의회가 폐막된지도 3년에 접어들고 세계주교대의원대회도 있었고 평신자대회도 있었다. 많은 연구적 모임을 통하여 교회쇄신의 방법론을 모색하였으니 연구에 그칠 것이 아니라 조금씩 구체적으로 천해 보아야 되겠다.
국내에서도 각 교구마다 여러가지로 연구도하고 약간의 시도도 하고 있으며 전국적인 조직이나 기관들도 산발적으로 모여서 기염을 올리기도 하는 것을 본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산발적인 노력이 효과를 내기 위하여는 좀 더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설계에 의하여 진행되어야 하겠고 그러한 설계는 마땅히 한국교회의 핵심적 기관인 전국주교회의에서부터 나와야 된다고 보는 바이다.
공의회 이전에도 주교회의라는 협의체는 활동하고 있었고 지금도 전국적인 중요한 정책결정은 주교회의에서 하고 있는 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란이 『쇄신은 중추에서 부터』라는 표제를 걸게된 것은, 주교회의에 대한 교회여론의 막대한 기대가 충분히 채워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공의회가 말하는 교회쇄신은 궁극적으로 모든 신자의 정신적 쇄신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그것은 각자의 양심에만 맡겨두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신자대중이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구체적인 지도방침이 최고 목자들의 권위있는 배려에서 제시되어야 한다. 제아무리 일선신부 개개인이 노력하고 평신도 사도직단체가 움지긴다 할지라도 지역교회의 본질적인 초석이요 상징이요 대표인 주교단의 인준과 지도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서는 교회적인 활동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주교회의도 그 조직과 직분과 운영에 관한 규약을 교황청이 인준하는 대로 본격적인 쇄신과업에 들어갈 것으로 생각되는 바이나, 이 기회에 우리는 주교회의에 대한 교회여론의 소망의 일단을 피력하고자 한다.
모든 회의가 성과를 얻으려면 결의사항의 적용을 받을 대상자들의 동태와 용의를 옳게 파악함이 절대로 필요하다. 그러기에 유능한 입법자들은 먼저 대중의 여론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하여 上下간에 긴밀하고 빈번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이러한 上下간의 대화는 동양적인 여건 아래서는 在下者가 서둘러서 열기는 극히 어려우니 上位者가 그런 기회를 적극적으로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下意上達이 제대로 되지아니 하는 곳에 진정한 上意下達이 이루어진 수 없음은 경험이 증명하는 바이다. 따라서 각 교구마다 교구민의 여론이 반영되고 집약될 수 있는 공식 대화의 기구를 상설해 둠이 좋다고 생각된다.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표명된 여론은 적당한 연구기관을 통하여 검토되고 분석되고 정리되어야 회의의 소재가 될 수 있다. 市井에 떠도는 막연한 이야기들이 그대로 論題나 議題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기에 주교회의는 그 산하에 기술적으로 회의를 준비하는 常設專門機構를 두고 그 기구에는 주교신부 수도자 평신자들이 참여하여 주교회의의 자문에 응하도록 해야 될 것이다. 이런 기구는 절대로 주교회의의 권위를 손상시키거나 자유재량권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리된 참고자료를 제공하고 단시일에 끝나는 회의의 拙速을 보완 할 수 있으며 더 많은 力量을 활용 할 수 있게 하는 기구이다.
회의의 결의사항 중 어떤 것은 각 지방에서 즉시 실시할 수 있는 것도 있겠고 어떤 것은 共同機構를 통하여 실시할 것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를 위하여 주교회의는 사무국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주교회의의 사무국 노릇을 하는 기관으로서 中央協議會라는 性格不明한 기관이 있다. 그 이름만 들으면 주교회의 보다도 더 上位의 기관이지 주교회의의 사무국이라는 인상은 찾을 수 없다.
또 현재까지의 이 기구의 성격이나 조직이나 운영방법을 가지고는 명실겸전한 주교회의의 사무국이 될 수도 없다. 우리는 결코 CCK의 前功이나 現任者들의 활동을 과소평가하는 자가 아니다. 다만 현재의 상태로서는 전문적인 사무국의 임무를 수행하기 극히 어려운 처지에 있으므로 명칭과 성격을 바꾸어놓고 조직과 운영을 쇄신하고 인원과 장비와 예산을 보강하기를 원하는 바이다. 그렇게 되어야만 주교회의에서 受任한 사무를 감당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우리는 한국교회 각 교구간의 조화있는 협력이 가능한 風土가 아쉽다고 생각한다.
손바닥 만한 이 나라에 10여개의 교구가 分立하여 人力과 財力을 이중 삼중으로 소모하고, 성적자들의 分布가 不均衡하고, 교구상호간에 有無相通이 안되는 현실은 한국교회 전체의 발전을 위하여 개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교회가 人不足, 力不足의 고민을 안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면 적은 힘을 필요 이상으로 흩어버리는 것은 애석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앞으로 전국주교회의는 이러한 분위기를 통찰하고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여 주기를 신자대중은 기다리고 있다.
신년벽두에 한국 가톨릭 대중은 공의회가 명시한 쇄신의 과업을 신중히 그리고 과감히 실천할 것을 다짐하면서 우리들의 總本營인 전국주교회의가 종합적이고 참신한 좌표와 계획을 제시하여 주기를 바라마지않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