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題材를 論하기 爲해서는 于先 敎會의 目的이 무엇인가를, 그런즉 가톨릭액션의 목적은 무엇이 되어야 될 것인가 하는 点에 對한 이야기로부터 始作하는 것이 順序에 맞으리라 生角한다. 이것은 이미 성경말씀 즉 『너희는 보천하에 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 믿고 세를 받는 자는 구령할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죄로 판단함을 받으리라. 믿는 자들은 이러한 영적을 가는 대로 행하리니 곧 내 이름을 의지하여 마귀를 쫓아 내며 새 말을 말하며 뱀을 집어내며 무슨 극약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을 것이요 병자를 손으로 덮으매 곧 나으리라』(말구 16 · 15 · 18)에서 보는 바와 같이 明白히 그 점에 대하여 紀錄되어 있다. 故로 우리는 敎會自體의 目的과 가톨릭 액션의 目的은 本質的으로 同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目的만을 明白히 알고 있다고 해서 어떤 事業을 成功시킬 수는 없는 法이다. 한 目的을 遂行達成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것을 가장 效率的으로 達成시킬 수 있는 方法이란 것이 무엇보다도 必要하다는 것은 두 말할 餘地도 없는 事實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가톨릭 액션에 있어서의 가장 效率的인 方法이란 果然 무엇일까? 그 효율적인 方法에 있어서 기술면의 거의 全部를 차지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이야말로 바로 組織의 問題일 것이다. 그런즉 이 組織이란 것이 目的達成의 한 方法일진대 그것을 利用하려면 먼저 組織 그 自體에 대한 卓越한 知識이 必要함은 勿論이다. 또한 거기 대한 깊은 硏究 뿐만 아니라 많은 經驗을 通해서 얻은 確實性 있는 眼識으로써 現實과의 對決을 꾀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勿論 組織이 重하다고 해서 그것만을 생각하여 根本的인 新學적 知識을 缺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어 버린다면 目的意識이 不明確해질 뿐 아니라, 반드시 取得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도 못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故로 深奧한 神學知識과 經驗을 通한 平信徒養成問題는 時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以上 上記한 여러가지를 생각하여 指導層에 바라고 싶은 것은
(ㄱ)敎會가 指向하고 公議會가 提示해 준 올바른 目的達成의 길을 指導者들 自身이 먼저 알아야 한다는 点이다. 敎會憲章 第4章은 平信徒에 關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목자들은 자기들이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진 것은 세계에 향한 교회가 질머진 구원 사명을 자기들만이 도맡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신자들이 자기들 나름의 방법으로 공통된 일에 일치협력하도록 그들(平信徒)을 사목하고 그들의 봉사와 「카리스마」를 인정하는 것이 자기들의 임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고 또 「로마서」 12장 4절에는 『대저 우리는 한몸에 많은 지체가 있으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지지 아니하는 것과 같이, 우리 모든 이는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을 이루어 각각 서로 지체가 되느니라』고 했다. 다음은 이런 것을 아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方法으로 實踐할 것인가의 問題다.
(ㄴ)實踐方法은 亦是 組織이다. 即 지금까지의 우리 敎會의 조직은 일 中心 즉 目的中心의 조직이 아니라 사람중심의 組織이엇다는 事實이다. 이런 方面의 有能한 사람이 있으니 이런 일을 해보자는 式이어서 結果는 뻔한 것이 되고 만다. 그 사람이 없어질 경우 그 人工的인 일도 무너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ㄷ)上記 (ㄱ)과 (ㄴ)처럼 아무리 좋은 敎育과 좋은 組織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責任을 完遂하기 爲한 權限을 賦與해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여기에는 또한 上部에서의 지나친 干涉은 不必要할 뿐만 아니라 어느 面에선 오히려 逆效果를 낸다.
그런즉 어느 程度의 雜音이 들려오더라도 우선은 責任과 權限을 맡은 사람을 信用하는 姿勢가 必要한 것이다.
(ㄹ)일을 始作하기 前에 세우는 치밀한 企劃은 不可缺한 것이다. 무엇보다 기획을 實踐하고 實踐한 것을 다시 觀察하는 것이 必要하다. 그리하여 企劃 - 實踐 - 觀察 - 企劃으로 돌아야 하되 제자리걸음의 圓形으로서가 아니라 나사形의 圓 즉 發展해 가는 圓으로서인 것이다.
이렇듯 액션에 있어서의 目的, 方法, 方法으로서의 組織, 組織에 못지않는 심오한 新學적 知識을 보다 深層的으로 認識 習得하는 것, 그리하여 그것을 活用하여 指導를 할 수 있을 때에 우리 가톨릭의 「액션」은 보다 힘차고도 눈부신 向上에로 나아갈 수가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