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역사에 모든 시대의 모든 인간과 관계있는 사건이 전개된 한 週間이 있다. 이 週間에 남에게 사랑을 받았고 미움을 받았던 한 인간이 사형되었다.
사람은 그를 매장했다. 그러나 그는 3일만에 부활했다. 사람은 언제나 죽게 마련이다. 그런데 세계 역사상 첫번으로 한 인간이 다시는 죽지 않기 위해 부활했다. 그를 예수라 부른다. 예수 부활날 새로운 세계가 시작했다. 왜냐하면 예수가 죽으셨다 부활하심으로 그에게 대한 신앙을 가진 자들에게 현재를 위해 하느님의 용서와 友情을 또 장래를 위해 그들 자신의 부활의 확실성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각 민족은 그 해방, 독립 혹 역사상 어떤 사건을 기념하는 축일이 있다. 그러나 한 민족의 축제를 모든 이가 기념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래 하마다 그를 믿는 자들은 그가 「예루살렘」에서 지낸 이 마지막 週間을 기념해왔다. 부활을 앞서는 이 週間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개선적으로 입성하신 주간이오 그가 성체성사를 制定하신 주간이오 수난하시고 죽으시고 묻히신 주간이다. 이 주간에 거룩하신 예수가 인간에게 모든 聖性의 원천을 열어주셨기 때문이다. 해마다 성주간의 예절은 우리를 첫 성주간에 되살게 해준다. 성주간은 우리를 주님의 죽음과 부활에 일치케 해준다. 신자인 우리는 매년 부활을 축하한다. 이날은 축일 중의 축일이다. 사도 성 바오로의 말씀대로 우리의 신앙이 여기 달려있다. 이날은 기쁨과 감사와 젊음과 쇄신의 날이다. 그러나 이 記念祭를 하루동안만 制限하지 아니한다. 부활날은 모든 전례생활을 윤택케 하는 빛과 같다. 이것이 「바스카」의 비사(秘事)이다. 이 「바스카」의 비사를 거행하기 위해 특징적인 날들이 있다. 그것이 부활주일을 앞둔 한 주일인 것이다. 초대교회에서 신자들이 부활전야에 구약에 있는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과 예수수난 이야기를 읽고 새 영세자들을 환영하고 또 그들과 함께 성체를 영(領) 하면서 밤부터 날이 새기까지 「구원의 위대한 비사」를 거행했다.
그후 차차 신자들이 이 「구원의 비사」(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 만찬 · 체포 · 수난 · 죽음 · 부활)를 예수를 따라 시간적으로 거행하고저 했다. 이것이 성주간인 것이다.
이 성주간의 예절에 깊이 이해하고 참여하자는 훌륭한 웅변 이상으로 우리에게 감명을 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주간을 거룩하게 지내고 우리의 정신을 수렴(修廉)하여 그리스도의 구원성업으로 들려야 한다. 교회는 일년에 적어도 부활 전후에 고해와 성체성사를 받기를 명한다. 그리고 열심한 신자라도 이 고해를 성토요일에, 영성체를 부활주일에 해야되는 줄 알고 있다. 얼마전 본란을 통하여 언급한 바 있거니와 고해성사를 성토요일 마지막 순간까지 미루지 말자. 부활축일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는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바스카」의 비사는 부활절 한주일 동안 기념하지 않는가! 가능하면 聖月火水曜日에 고해하는 것이 좋다. 주님이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성목요일에 영성체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는가 모든 고해는 중요한 행동이다. 그러나 부활 영성체가 장엄하듯 그를 준비하는 부활 고해도 특수한 것이다. 이것이 예수께서 우리 죄를 없애시기 위해 당하신 고난에 대한 우리의 대답이다. 우리는 너무 가끔 고해성사를 엄격히 개인적인 것으로 생각해 왔다.
오늘날 좀 더 여기 공동체적인 뜻을 살리자. 우리 죄를 위해 참회할 뿐 아니라 이 하기 어려운 수고 앞에 주저하는 우리 형제이 죄를 위해서도 참회하자. 이렇듯이 풍요한 향연이 베풀어지는 부활 축일을 앞두고 적어도 일년에 부활성사 한번 받으라는 교회의 가르침은 매우 빈약한 최저의 생활력을 제시한 것이라 하겠다. 전례개혁이 우리에게 제시한 방법으로 부활성사를 받는 것이 우리를 위해 더 쉽다. 부활성사를 받는다는 것은 영세자로서,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약속한자로서의 조건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신자들에게 성세의 허원을 갱신하도록 하고 성체의 잔치에 우리를 초대하는 「부활전야제」가 성주간의 절정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예절 전후 성주간에, 온 사순절에, 우리가 미사에 참여할 때마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죄의 사함을 받을 때마다, 교회주년을 통해 좀 더 깊이 그리스도의 세계에 들어가는 정도에 따라 우리는 「바스카」의 비사에 참여하는 것이다. 「바스카」의 비사에 참여한다는 것은 교회안에서 있어야 할 신자의 조건이다.
이 전진이 끝날 때 하느님의 영광 속에 주님의 재림이 올 것이다. 또 한가지 성금요일의 「바스카」 大齋를 꼭 지키자는 것이다. 성금요일의 대재를 「바스카」의 대재라 부른다. 왜냐하면 성목요일 저녁부터 즉 주님의 만찬 미사와 함께 「바스카」를 성대히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 대재로 「바스카」의 첫 시간을 바치는 것이다. 이를 지키는 것은 修德的인 가치뿐 아니라 전례적인 가치도 있다. 전례헌장에는 합당하다고 생각되면 성토요일까지 연장하여 고상 하고 감수적인 심정으로 주의 부활의 즐거움에 다다르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이 대재는 세말적인 가치도 있다. 『신랑이 떠나신 날 우리는 재소하는 것이 당연하지 아니할까 그리고 부활하신 이 외식탁에서 자리를 잡고 「알렐루야」의환희가 울려퍼질 때 우리는 재소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